사진속일상

관악산을 넘어 사당에 가다

샌. 2013. 8. 2. 14:25

 

사당에서 저녁 모임이 있던 날, 겸사겸사 관악산을 넘어서 가기로 했다. 서울대 정문에서 연주암으로 올라 사당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전에 수도 없이 지났던 길이었다.

 

20년 전 S공고에 있었던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관악산을 넘어 퇴근을 했다. 2학기가 되면 3학년 학생들이 현장 실습을 나가 수업 시간이 왕창 줄었다. 어떤 해는 주당 8시간만 하면 되었다. 이틀은 아예 수업이 없었다. 인문계 과목에 담임도 하지 않았으니 출근해도 그저 탱자탱자였다. 게다가 전공마다 사무실이 다르고 교사들이 흩어져 있으니 통제하기도 어려웠다. 내 교사 시절 중 맘껏 농땡이를 부렸던 황금 시기였다. 그때 관악산을 가장 많이 찾았었다.

 

옛길을 걸으니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같은 사무실에 있었던 동료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빡빡하게 지냈던 때는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데, S공고에서처럼 자유롭고 여유있게 보냈던 때의 사람들은 얼굴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환경이 그래서였는지 모두가 온화하고 웃음이 넘쳤다.

 

 

 

등산로 초입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는 가족들이 많았다. 계곡물은 예상외로 깨끗했다. 예전만 해도 오염이 되어서 이런 물놀이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조금 더 들어가니 마치 강원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계곡 풍광이 좋았다.

 

 

계곡은 산 정상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관악산 계곡은 굉장히 길게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일부이긴 하지만 산 중턱 쯤에는 보기 흉하게 계곡 정비 공사를 해 놓았다. 산이 깎여 나가는 걸 방지하는 게 목적이었겠지만 이렇게 시멘트로 발라 수직벽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산에까지 수로를 만들다니, MB의 4대강 망령이 떠올랐다.

 

 

배롱나무도 붉은 꽃을 피웠다.

 

 

연주암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본 전원도시 과천은 단독주택, 연립주택, 고층 아파트가 균형을 맞추고 있다. 과천을 바라보면 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정도로 집들이 너무 빽빽하다. 산 등성이에 석탑이 새로 생겼다.

 

 

관악산 기상 레이더. 신발이 좋지 않아 저리로 올라가는 건 포기했다.

 

 

정상 가까이에 관악사지(冠岳寺址)가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결과를 보면 관악사는 15세기에 조성된 사찰로 1,800평 규모의 왕실과 관련이 있던 사찰이었다. 출토 유물 중에는 용과 봉황을 새긴 다수의 막새기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명종 5년(1550)에 관악사의 승 계은이 호랑이 가죽을 바쳐 상을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관악사는 18세기 말에 산사태로 폐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사당으로 내려가는 능선길은 조망이 좋았다. 앞으로 서울 시내를 바라보면서 내려갔다. 관악산은 바위산이었다. 신기하게 생긴 바위를 구경하는 재미는 있지만, 돌길이 대부분이라 걷기는 조심스러웠다.

 

저녁 약속 시간에 맞추느라 계곡에서는 두 번이나 탁족을 했고, 능선에서도 쉬엄쉬엄 걸었다. 여유있게 홀로 걷는 산길이 좋았다. 관악산이 아니라 어디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산행 시간; 5시간(13:00 ~ 18:00)

* 산행 거리; 약 8km

* 산행 경로; 서울대 정문 - 삼거리 - 계곡길 - 깔딱고개 - 연주암 - 사당능선- 사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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