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태양초

샌. 2013. 8. 15. 19:28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굳이 태양초만을 고집하신다. 요즈음은 대부분 건조기를 사용해서 힘들게 햇볕으로 고추를 말리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집에는 고추 건조기를 다 갖추고 있다.

 

뙤약볕 아래서 고추를 따는 일도 고되지만, 고추를 말리는 것도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8월 한 달 내내 고추를 따고 말리는 과정이 반복된다. 올해의 불볕더위가 고추 말리는 데는 아주 제격이다. 비라도 며칠 내리면 고추는 불을 땐 방으로 모셔야 한다. 그러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생도 그만큼 더 늘어난다.

 

고추를 말리는 데는 어머니만의 노하우가 있다. 바깥에서 말린 고추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온다. 그 타이밍은 감으로 판단하는데도 거의 완벽하다. 건조되어 바삭거리는 고추를 보면 작품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뭐 저렇게 신경 쓰며 힘들게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머니를 보면 사는 재미가 거기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어떤 때는 자식보다 농작물을 더 아끼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게으르기 짝이 없는 아들이다. 일에는 젬병이니 아예 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고향에 내려가도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방에서 빈둥거리며 책 나부랭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인간을 일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농촌에서 좋아할 리가 없다. '게으른 농부들'의 마을이 있다면 모를까, 귀향할 꿈은 접을 수밖에 없다.

 

새벽부터 밤까지 바지런히 움직이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일에 대한 어머니의 몰입이 무척 궁금해진다. 삶의 관성일까? 아니면 노년의 외로움에 대한 반작용일까? 그 무엇이든 자식 노릇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자책을 들게 하는 건 마찬가지다. 차라리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로 나는 살아가리라 속으로 다짐한다. 가지런히 정돈된 어머니의 작품을 보며 결코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하게 계시니 그지없이 감사한 일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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