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합리적 행복

샌. 2013. 8. 19. 15:13

'불행 또한 인생이다'라는 부제가 눈에 띄어서 이 책을 읽었다. 지은이인 영국의 저널리스트 올리버 버크만은 '긍정적 사고'를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이론에 반기를 들고 도리어 비관론이 진정한 행복의 세계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내가 젊었을 때도 노만 빈센트 필 목사로 대표되는 '적극적 사고방식'의 낙관론이 굉장히 인기를 끌었다. 사람은 자기가 머릿속에 그리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즉, 성공이라는 긍정적 시각화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일종의 자기 계발서류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방이 시궁창인데 과연 긍정적 사고라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일시적인 마취제 역할밖에 못 한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외롭고 슬프고 불행하다는 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데서 마음의 평안이 시작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인생은 행복과 고통의 융합체다. 어두운 쪽을 부정하면 할수록 도리어 부정의 늪에 빠진다는 걸 여러 연구나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잘못되는 일의 상당 부분이 너무 잘하려는 노력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밝은 세계에 대한 편향된 추구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안과 고통을 야기한다. 이젠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예를 들면 불확실성 즐기기, 불안정 포용하기, 긍정적 사고방식이 아닌 실패에 익숙해지기, 죽음에 가치 두기 등이다. 정말로 행복하려면 부정적인 감정도 기꺼이 경험해야 한다. 최소한 그런 감정들로부터 너무 강박적으로 달아나려 애쓰지 않아야 한다고 지은이는 조언한다. 부정적 경로를 통해 행복에 이르는 방법이다.


책에는 스토아 철학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서양에서는 스토아, 동양에서는 노장사상이 지은이의 생각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최초의 스토아 철학자는 BC 334년경 키프로스에서 태어난 제논이다. 그 뒤 이 학파의 영향력은 로마에 전파되었고 에픽테토스,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대표적 스토아 철학자가 나왔다. 그들은 이성을 중요시했고, 인간 고유의 고결한 삶이란 이성과 합치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에 합치하도록 고결하게 살면 '내적 평온'을 얻는다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평온'은 현대의 긍정주의자들이 말하는 값싼 행복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을 담담하고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을 지향하는 것, 즉 회피하지 않고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평온을 성취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 중 다수가 특정한 사람이나 상황, 사건이 우리를 슬프고 불안하고 분노하게 만든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쉴 새 없이 지껄이는 옆자리 동료 때문에 짜증이 난 경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동료가 짜증의 원인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그 무엇이든 우리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것을 두고 부정적이니 긍정적이니 묘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실제로 고통을 야기하는 것은 그것에 관해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이다. 옆자리 동료가 본래 짜증스러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방해받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우리의 판단 때문에 그가 짜증스럽게 여겨진다는 얘기다. 우리의 관점에 비춰볼 때만 나쁜 일이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마음의 동요는 우리 내부의 의견을 통해서만 생긴다"고 말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나쁜 일을 미리 생각함으로써 불행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는다. 현대의 긍정적 낙관주의자들이 일이 잘못됐을 때 더 큰 충격을 받는 것과는 다르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에 애착이 생기면 그것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지 말고, 병이나 크리스털 잔처럼 대하라. 자식, 형제, 친구에게 입 맞출 때는 반드시 죽을 존재를, 즉 당신의 소유가 아닌 존재를 사랑하고 있음을 되새겨라. 그는 지금은 당신 앞에 있지만 결코 헤어지지 않을 존재도, 영원한 존재도 아니며 특정 계절에만 볼 수 있는 무화과나 포도 같은 존재다." 세네카는 한 발 더 나아가 의도적으로 최악의 맛을 경험해 보라고 권한다. 물질적 부를 잃는 걸 제일 두려워한다면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자신을 안심시키지 말고 오히려 이미 다 잃은 것처럼 행동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끔찍할 거라는 불안이 터무니없음을, 불쾌하긴 하지만 그 상태가 그리 큰 재앙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는 게 스토아적으로 사는 것이다. 슈퍼마켓에 갔을 때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면 짜증이 난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 관점에서 그런 상황에서 마음이 동요된다면 판단 착오다. 그 상황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현실에 분노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추론하면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평가가 과장됐음을 알아차리게 되고, 거품을 걷어내면 괴로움이나 짜증을 털어내고 평온을 찾을 가능성이 커진다. 체념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수용하는 것이다. 폭력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스토아주의자의 현명한 행동은 그것을 참아내는 게 아니라 벗어나고자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대신, 상황의 진실을 직시하고 무엇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판단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자, 행복을 위해 반드시 통제해야 할 한 가지다. 평온함은 합리적인 판단으로 비합리적인 판단을 대체하는 데서 나온다.


'스토아적으로 살아가기'는 나에게도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다. 당장 삶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문제다. 그래서 특정 상황에 부딪쳤을 때 '스토아적'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생각을 바꾸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제멋대로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스토아적 수련이 반복된다면 좀더 지혜로운 인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리고 스토아와 노장 사상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고 싶다. '에고(ego) 벗어나기'에서 공통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이 책 <합리적 행복>은 행복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꾸게 한다.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을 맞아들이는 일이 오히려 즐거움과 만족을 준다는 역설을 말한다. 나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말라. 마음이 불안한 건 안정감을 느끼려고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불안정과 불안, 비관과 슬픔 앞에서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 긍정적인 생각만 하라는 주문보다 행복과 가까워지는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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