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함석헌 읽기(14) - 뜻으로 본 한국역사

샌. 2013. 9. 1. 09:34

함석헌 저작집 30권 중에서 1권부터 13권까지를 읽었다. 처음에는 전집을 모두 읽겠다고 했지만, 점점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져 뒷부분은 관심 있는 부분만 골라 읽기로 했다. 선생의 대표 저작이 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다.

 

선생이 역사를 보는 키워드는 의미와 고난이다. 모든 역사에는 뜻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인 선생은 하나님 섭리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한다. 그중에서도 한민족은 유독 고난을 많이 겪었다. 선생은 우리 민족을 '수난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깨지고 저기서 짓밟힌 갈보가 된 여왕이다. 그러나 고난은 무의미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 고난은 더 높이 들어 쓰기 위한 하나님의 단련이다.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민족정신이다. 그러나 편협한 민족주의는 아니다. 우리의 융성한 민족 문화를 바탕으로 세계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역사의 주인은 민중이다. 앞으로 국가주의가 끝나고 민중이 해방이 되는, 그래서 전 세계가 하나로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민중이 겪는 고통은 밝은 미래를 맞기 위한 진통으로 볼 수 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고난과 눈물의 역사다. 간디가 말한 대로 고난은 생명의 원리다. 고난 없이 평화가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난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평면적인 인생관을 고치기 위해, 우리의 바탈을 드러내기 위해, 장차 올 새 역사에서 우리의 사명을 다할 자격자가 되기 위해, 참 종교를 가지기 위해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관점이라면 고난은 오히려 축복이기도 하다. 선생의 역사관은 고난사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선생은 기독교적 역사 의식을 가지고 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역사란 인류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쓰인 건 일제강점기 때였는데 해방 뒤 개정판을 내면서 종교적 색채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기본 관점은 여전하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거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옳고 그름을 떠나 역사를 관통하는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신선하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으며 안타깝고 울분을 느낀 곳이 많았다. 어찌 이렇게 정신적으로 빈곤하며 나약한 민족이었단 말인가. 고구려 이래로 계속 내리막길만 굴러떨어진 역사였다. 선생은 썩어빠진 민족 정신을 통탄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자랑스런 우리 역사에 대해 이 책이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할 것 같다. 사건이나 위인의 업적이 아닌, 그의 뜻이 무엇이었냐가 평가의 기준이다. 젊은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선생이 이 책을 처음 쓴 건 1930년대 오산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있을 때였다. 별 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민족 의식을 넣어주기 위해 혼으로 쓴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판단에는 정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선생의 혼이 숨쉬고 있는 이 책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뒤흔든다.

 

책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앞으로의 역사는 점점 더 지성의 역사가 될 것이다. 칼을 꺾고 생각을 깊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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