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김영민의 공부론

샌. 2013. 9. 11. 08:49

한자로 쓴 '공부(工夫)'라는 단어는 이상하다. '장인 공[工]'과 '지아비 부[夫]'로 된 의미가 지금 사용하는 공부의 뜻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 의미의 공부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공부와는 달랐음이 분명하다.

 

김영민 선생이 쓴 <공부론>은 본래적 의미의 공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공부란 체계와 에고이즘으로부터 어긋냄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몸부림에서 시작한다. 이걸 선생은 '몸을 끄-을-고'라는 표현으로 쓴다. 공부란 머리로 하는 지식놀이가 아니다. 생각만이 많은 사람들은 입과 펜으로 관념의 사상누각이나 이론의 만리장성을 쌓지만, 몸을 끄-을-고 나온 사람들은 온갖 지식과 이론을 담으면서 비우고, 쓰면서 지우며, 알면서 모른 체하는 과정을 통과하여 몸이 좋은 사람들로 변화해 간다. 이 과정에서 '체계와의 창의적 불화'는 피할 수 없다. 공부란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동무에게로 향하려는 아득하고도 치열한 싸움이다.

 

자본제적 세속을 살아가면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는 세 유형이 있다고 한다. 첫째, 자본주의적 체계와의 마찰로 인한 상처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이들. 둘째, 이데올로기와 체계의 작동방식에 깊이 포섭된 나머지, 상처를 주체만의 문제로 소급시킨 뒤 강박적으로 세속 안의 건강함을 쫓으면서 체계의 심연으로 더욱 깊이 투신한 이들. 셋째, 상처에 대한 감수성의 예각이 날카롭게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체계의 절대적인 영향력 앞에서 냉소와 허영을 상처 위로 얹힌 뒤 자아라는 거울 뒤로 칩거해 버린 이들이다. 그러나 소수의 공부하는 사람은 상처의 기원이 지닌 역사와 지형에 대한 각성을 해나가면서 체계와의 창의적 불화라는 삶의 새로운 지평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공부란 포기며 뒤집음이다. 구도(求道)의 과정이다. 공자가 말한 '학(學)'이 공부와 닮아 보인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은 학습[study]이지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공부는 자기에 집중하는 것이면서 자기를 넘어서는 것이다.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지행병진(知行竝進)이 되지 않으면 공부가 아니다. 공부는 나를 흔들고 깨우면서 심연에서부터 변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체계와 불화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은 어떤 이념에도 구속되지 않는 독립된 인간이 된다. 공부는 참 인간이 되는 길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지극하고 극진해야 한다. 이런 것이 책을 읽고 공부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갖게 된 생각이다.

 

공부는 공부하는 사람을 심자통(心自通)의 경지로 이끈다. 책에는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검사(劍士)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무림의 고수가 이른 경지를 공부와 비교해서 설명한다. 선생은 공부의 궁극적 경지를 '인이불발(引而不發)'로도 표현한다. 활을 당기되 쏘지 않는다 - 당기는 것과 쏘는 것 사이에 공부길의 묘맥(苗脈)과 밑절미가 있다는 것이다. 공부의 이치가 알 듯하면서도 난해하다.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익으면 진리가 도망치듯, 도망치는 진리를 도망치는 대로 놓아두는 것! 그처럼 기다리되 기대하지 않고, 알되 묵히며, 하아얀 의욕으로 생생하지만 욕심은 없으니, 당기되 쏘지 않는 것입니다."

 

책에 나온 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 어쩌면 이 한 문장만 새겨보고 여겨들어도 공부의 벼리를 휘어잡을 수 있을 테다.

 

- 공부란 개종(改宗)이다. 개종이란, 나 혼자만의 독창성이라는 미망에서 벗어나는 실존적 체험을 말한다. 혹은 자기-생각의 거울방에서 벗어나 몸을 끄-을-며 밖으로 나가는 겸허한 체감을 가리킨다. 나 역시 체계를 윤동시키는 강박적 닮음의 메커니즘 속에서 하나의 단말기 구실밖에 할 수 없었다는 외상적 깨침을 말한다.

 

- 공부는 내 몸의 역사와 생활 탓에 생긴 덫을 제어하고 몰아내는 끈질긴 노력에 바탕을 둔다. 나는 이것을 오래 전부터 '지우면서 배우기(learning by way of unlearning)'라고 불러왔다.

 

- 스스로에게 짐이 되지 않는 고독의 박자는 무엇일까? 진공과 결핍이 아닌 고독, 냉소나 허무가 아닌 고독, 무력과 나태가 아닌 고독, 생산성의 극한으로 초대하는 그 창조의 블랙홀 같은 고독은 내 일상의 생활양식에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 것일까?

 

- 영감은 오랜 경험을 부싯돌로 삼아 불꽃을 피우고, 좋은 생각은 언제나 갖은 이론 이후에야 느리게 찾아오는 진경이다.

 

- 책을 읽다가 싫증이 생기면? 계속해서 책을 읽어라! / 覺懶看書 則且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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