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마지막 4중주

샌. 2013. 9. 27. 07:57

 

푸가 현악4중주단 네 단원의 인생 이야기가 음악과 아름답게 어우러진 영화다. 가장 연장자인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숨겨졌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네 명은 서로 스승과 제자, 부부, 친구, 옛 연인 등으로 긴밀한 인간적 유대를 맺으며 25년간 4중주단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 사이의 갈등, 사춘기 자녀와의 마찰, 친구 딸과의 사랑, 건조한 부부관계, 외도, 외로움 등 보편적인 인간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다. 요란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잔잔하게 인생의 모습을 풀어 보여서 감동을 주는 영화다.

 

어차피 인생이란 삐걱거리고,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튜닝이 안 되어 있다고 연주를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다. 불협화음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그 상태에서 최대한 노력하며 조화를 맞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사랑하고, 노력하고, 실수하고, 용서하고, 그렇게 비틀거리며 살아간다. 갑자기 닥친 불행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펼쳐 보이는 삶의 색조는 늦가을을 닮았다.

 

피터가 학생들을 지도할 때 파블로 카잘스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실수를 비난하자 피터는 자신과 카잘스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려준다. 피터가 젊었을 때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카잘스 앞에서 연주하게 되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만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카잘스는 멋진 연주였다고 칭찬했다. 피터는 엉뚱한 칭찬에 무안하면서 도리어 자신에게 무관심한 게 아닌가 싶어 더 서운했다. 훗날 카잘스와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때 일을 얘기했더니, 카잘스는 그때 자신이 연주했던 곡의 한 소절을 그대로 재현하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단 한 소절이라도 아름답게 연주한다면 우리는 그 연주자에게 감사해야 한다네. 몇 개나 실수하는지 단점만 헤아리는 짓은 멍청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장점과 잘된 점을 찾아 칭찬하는 삶을 살고 싶다네."

 

갈등 속에서 피터의 마지막 은퇴 무대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이 선택된다. 빠른 박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피터는 연주를 새로운 첼리스트에게 맡긴다. 그리고 쓸쓸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보여주는 피터를 비롯한 네 사람의 삶은 곧 우리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니 좋은 책 한 권을 읽은 듯하다. 씨네큐브에서 아내와 같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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