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유방 / 문정희

샌. 2013. 9. 4. 08:09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드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을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꼭꼭 싸매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놨던 유방

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

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주셨듯이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오랜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 지금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안고 서서

이 유방이 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을 촬영하며

 

- 유방 / 문정희

 

 

이웃으로 안면을 트고 지내는 두 분이 최근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한 사람은 남자였다. 남자도 유방암에 걸린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런데 남자의 유방암은 여자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이 분도 수술이 아닌 약으로 치료가 가능한 모양이다.

 

여자는 몸을 느끼는 데도 남자와 다른 것 같다. 시인은 유방암 검사를 받으면서야 유방이 자신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전까지는 사랑하는 남자와 아기의 소유로 무심하게 대했던가 보다. 남자와는 다른 시각이다. 여자와 남자가 세상을 관찰하는 렌즈는 서로 다르다. 함께 살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여자와 남자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더 실감한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에 대한 여성의 감수성을 남자가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시인이 말하는 '슬픔'의 의미를 어슴푸레 짐작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