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통일은 대박

샌. 2014. 1. 23. 10:34

지난 연말부터 통일에 대한 발언이 무성하다. 국정원장이 2015년의 통일을 위해 헌신하자고 직원들에게 훈시한 내용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그 자리에서는 독립군가를 부르면서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통일을 언급하며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다. 그 뒤에도 통일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유망한 투자처며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외국 학자들의 발언이 연신 소개되고 있다. 늦어도 2020년까지는 한반도가 통일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동시에 TV에서는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방송하고 있다. 갑자기 통일 풍년이 되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

 

민족의 비원인 통일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통일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국민의 통일 의식도 희박해져 있다. 여론 조사를 해 보면 오히려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 비율이 더 높게 나온다. 사회적 혼란과 통일 비용의 부담을 선전해 왔다. 그러던 게 갑자기 '통일 대박'이 되었다. 길거리 플래카드에서도 이 문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선 대통령의 이 발언이 너무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어서 유감이다. 한창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불편한 감정과 비슷하다. 오랫동안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다 보니 생각하는 관점이 전부 자본 중심으로 변했다. 같은 민족, 형제라는 의식은 별로 없다. 북 지도층은 밉지만 대다수 북한 주민은 독재 체제의 희생자들이다.

 

통일은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도 중요하다. 남과 북 사이에 신뢰를 쌓으면서 한 단계씩 접근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인내를 가지고 북한의 변화와 개방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현 상황이 불안정한 건 사실이다. 북한 급변 사태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태를 유도하는 듯한 우리의 언행은 도리어 북한을 자극해서 득 될 게 없다. 대규모 군사 훈련이 예정된 3월까지는 다시 엄청나게 시끄러워질 것 같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한 마디가 민족 통일에 대한 당위성을 각성시킨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통일은 방법론이 중요하다. 준비 안 된 통일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통일이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왠지 불안하다. 해방 뒤의 분단이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졌듯, 통일도 우리의 주체적 결정 없이 갑작스레 닥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통일 과정의 대원칙은 평화다. 강풍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가는 대형 사고를 낼 수 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한반도에 들어설 나라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전혀 새로운 체제가 될 수는 없을까? 평화와 민주주의의 바탕에서 인간 중심의 나라를 새로 만들 수는 없을까? 군대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전 세계에 중립과 평화 선언을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앞으로 세계가 나가야 할 국가의 모델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이런 나라를 꿈꿀 때 통일은 우리에게 진짜 대박이 되는 건 아닐까?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치기 전에 제대로 된 통일 국가를 만들 준비는 되어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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