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논어[71]

샌. 2014. 2. 26. 11:50

선생님 말씀하시다. "누가 미생더러 정직하다 하는고. 어느 사람이 식초를 얻으러 온즉 이웃에서 빌려다가 주었는데...."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

 

- 公冶長 13

 

 

미생(微生, 尾生)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고등학교 윤리 시간이었다. 미생이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되어도 애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는 세차게 내리고, 강물은 점점 불어났다. 미생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각을 붙잡고 끝까지 버텼다. 그러나 머리까지 차오른 강물에 결국은 익사하고 말았다. 약속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한다는 교훈으로 윤리 선생님은 미생 이야기를 하신 것 같다.

 

당시의 어린 마음에 미생 일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도 아마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생을 신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미련하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장자는 더 신랄하다. '도척' 편에서 장자는 미생을 이렇게 폄하한다.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떠내려가는 돼지, 또는 바가지를 쓴 거지와 다를 바가 없다. 명목(名目)에만 달라붙어 죽음을 가벼이 여겼고 본성으로 돌아가 수명을 보양하지 않는 자다."

 

<논어>에 또 다른 미생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사람이 미생에게 식초를 얻으러 왔는데, 자기 집에 없으니 이웃에서 빌려다 주었다. 이걸 공자는 정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납득이 잘 안 된다. 친절하다고 칭찬을 받을 만한데 도리어 정직하지 않은 행위로 된 것이다. 없다, 하고 돌려보내야 정직인가? 미생이 식초가 없는 게 체면이 안 서기 때문에 이웃에서 빌려다 주면서 자기 것인 양 가장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정직하다고 평판이 난 미생의 인간됨으로 볼 때 억지 해석 같다.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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