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 장의 사진(18)

샌. 2014. 3. 10. 12:21

 

인생에서 그나마 아름다운 시절은 유년이 아닐까 싶다. 유년은 가족의 축복 가운데 태어나서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는 때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 그대로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년의 기억은 대부분 망각의 늪으로 가라앉았다. 간신히 남은 몇 개의 기억이 따스했던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가 준다. 삭막한 인생살이에 지친 몸이 쉬어가는 오아시스가 바로 유년의 기억이다.

 

내 의식에 남아 있는 최초의 기억은 아마 서너 살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따스한 봄날이었는데 시골 동네에는 잔치가 있었던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은 새 옷을 곱게 차려입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나도 고모 등에 업혀서 한 손에는 풍선을 들고 행렬을 따르고 있었다. 골목길은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너무 들뜬 탓이었을까, 잡고 있던 풍선의 실을 그만 놓쳐버렸다. 내 손을 떠난 풍선은 야속하게도 하늘로 빨려가듯 멀어져갔다. 파란 하늘로 사라지는 풍선을 바라보며 나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 놓친 풍선, 울음, 어른들의 달래기,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고운 풍경화로 남아 있다.

 

이 기억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몇 년 전에 고모를 만났을 때 물어보았더니 전혀 모르겠다고 하셨다. 꿈에서 본 장면을 실제 있었던 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어 유년의 첫 기억이 틀림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 분명한 건 언제 어디서나 이 최초의 기억이 떠오르면 내 마음은 봄날처럼 따스해진다는 점이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유년의 추억은 정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위안을 받을 추억이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행복한 일이다.

 

이 사진도 유년의 한 때를 기억나게 한다. 아마 다섯 살쯤 되지 않았나 싶다. 오른쪽에 있는 작은 아이가 나다. 옆에 있는 세 살 많은 동네 형은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내 뒤에 계신 분은 삼촌으로 결혼하기 전이라 우리와 같이 살고 있었다. 초봄쯤 되는 어느 날이었다. 아마 동네에 들렀던 읍내 사진사에게 삼촌이 부탁했을 것이다. 나는 삼촌과 같이 찍을 모델로 선택되었고 최고로 좋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삼촌 뒤를 따라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사진을 찍은 곳은 마을에서 20분 정도는 걸어가야 하는 강변이었다. 고향 사투리로 '갱밴'이라고 불렀다. 그때 삼촌은 왜 하필 휑한 이곳까지 와서 사진을 찍었을까? 아마 당시로서는 여기가 제일 멋진 풍경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차라리 동네를 배경으로 했다면 옛날의 마을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초가집도 오래전에 허물어져 찾아볼 수 없다. 사진 한 장 남은 게 없다. ㄱ자 형태에 담이 둘러싸고 있어 안마당에 있으면 무척 포근한 집이었다. 담에 붙은 한쪽에 마구간이 있었는데 소, 돼지는 같은 식구로 여겼다. 동생의 응가 처리를 하기 위해 부르면 어디선가 쏜살같이 달려왔던 독구도 있었다. 바깥마당은 넓어서 동무들과의 놀이터가 되었고, 풋구 같은 마을 행사도 열렸다. 그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감나무 아래 변소가 있었다. 유년의 무대가 되었던 그리운 곳이지만 이젠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나이가 들면서는 옛날 앨범을 열어 볼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어렸을 때의 나를 대면하게 되면 쑥스럽기도 하고 왠지 애잔한 감정이 생긴다. 세월의 간극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깊숙이 숨어 있는 기억의 창고 문을 여는 것은 마치 거미줄 쳐진 지하창고에 들어가는 것처럼 꺼림칙하다. 그래도 가끔은 반짝이는 보석이 숨어있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옛 추억을 반추하며 산다는데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가 남다를 때가 있다. 사진은 사실적이지만 먼 과거의 모습은 도리어 비현실적이다. 나에게 과연 저런 때가 있었을까, 오래된 사진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도 유년의 기억은 따스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무척 사랑을 받았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당시 대부분이 그랬지만 나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에 둘러싸여서 자랐다. 특히 할아버지가 첫 손자였던 나를 무척 귀여워해주셨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환갑이 지났으니 느지막이 본 손자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이 서로 아기를 보려고 해서 어머니는 정작 품에 안아볼 틈도 없었다고 한다. 어른들의 무한한 사랑과 돌봄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이제는 내가 그 사랑을 돌려줄 차례가 되었다. 나를 위한 시간은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누군가가 속삭인다. 인생은 정말 기묘하고 불가측이다. 억지로 인연을 만들 수도 없고, 하늘이 점지한 걸 인간이 떼어낼 수도 없다. 인간의 뜻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나는 어떤 상황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한다. 그중에서도 빚진 사랑에 대한 의무는 이 지상의 시간 동안 갚아나가야 할 나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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