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두 일화

샌. 2014. 4. 1. 08:52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인간됨을 알아보는 데는 짧은 단편으로도 충분하다. 리영희 선생의 글에 나오는 두 사람에 대한 일화다.

 

1

구한 말 한국 조정의 고문으로 와 있던 스티븐슨이 미국으로 돌아가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 없는 민족이다. 앞으로 일본의 속국이 되어 보호를 받아 마땅하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여 민족의 분노를 샀다. 그때 그 보도를 보고 격분한 교포 2명이 부두에서 스티븐슨을 저격했다. 두 의사들은 살인죄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조선인 변호인을 찾아야 할 텐데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동변상련의 처지에 있던 유대인들이 무료변론을 해주겠다고 나왔다. 그런데 또 통역을 누가 해야 할지 문제가 되었다. 교포사회에 이름도 있고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할 정도였으니까 이승만 씨가 생각되는 것은 당연했다. 재미교포들은 이승만 씨를 통역인으로 세우기 위해 급히 전보를 치고 여비까지 부쳤다. 이승만 씨가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와서는 "나는 기독교신자이기에 살인자의 변론을 할 수 없소"하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찾은 것이 당시 UCLA에서 공부하던 신흥우라는 사람이었다. 소식을 듣고 그가 뛰어와서는 "서툰 영어지만 조국을 위해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해서 변론이 이루어졌다.

 

2

김구 선생이 환국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경교장에 전화가 걸려 왔다. 선우 비서가 받으니, 유명한 친일 재벌 박흥식 씨가 김구 선생을 숙소로 찾아 뵙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하면서 선생의 허락을 요청했다. 선우 비서가 선생께 그 뜻을 전하자 선생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런데도 잠시 뒤에 박 씨는 승용차를 타고 경교장 정문에 나타났다. 안내하고 들어온 비서의 손에는 녹색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선우 비서가 선생에게 아뢰자 역시 돌려보내라는 명령을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간청하니 선생은 못 이겨 허락했다. 집안에 들어온 박 씨는 온갖 아첨 끝에 비서가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놓고는 정치자금으로 헌납하려 하니 받아달라고 청원했다. 지폐로 300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때로서는 거액이었다. 그것을 김구 선생은 낯이 붉어지더니 대갈일성했다.

"나를 왜놈으로 착각하는가! 친일파의 근성을 바로잡지 못하려거든 썩 물러가시오!"

박 씨는 비서로 하여금 돈보따리를 챙겨들게 하여 총총히 문 밖으로 사라졌다.

박 씨는 그 길로 이화장에 머물고 있던 이승만을 찾아갔다. 대문에 들어선 박 씨가 이 씨의 개인비서를 통해 내방의 뜻을 전하자 곧 이 씨가 몸소 현관까지 마중나왔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미스터 박, 반갑습니다. 어서 올라오시오."

두 사람이 대좌한 자리에서는 유쾌한 웃음이 터지고, 백년지기와 같은 오랜 대담 끝에 박 씨는 이승만과 다정한 악수를 나누고 물러났다. 뒤에는 돈보따리가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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