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

샌. 2014. 4. 3. 09:50

얼마 전에 서울 광화문 거리를 지나다가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리포터가 마이크를 갖다 대며 이렇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요?" 그런데 갑자기 행복에 대해 물으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방송용 카메라가 노려보고 있으니 더 그랬는지 모른다. 결국 머뭇거리다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행복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고 행복에 관해 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다고 여겼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난감했다. 인터뷰 자리를 떠나서도,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명확한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이 한 행복 이야기는 전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과거에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 또는 불행하다고 느꼈던 때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행복이다, 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막막해지듯이 행복도 마찬가지였다. 대답하기 어렵다고 행복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행복이란 뭘까? 생각하면 할수록 골치만 아플 뿐 답이 나오지 않는 게 고차원 수학 문제 같았다.

 

며칠 전에 아내가 어느 모임에 다녀와서 말했다. "그 모임 사람들은 전부 가정도 화목하고 행복해. 돈 걱정도 안 하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거기만 갔다 오면 마음이 심란해." 아내의 솔직한 이 말을 들으며 불현듯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가 떠올랐다. 간단했다. 행복이란 타인의 행불행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마음이 기쁘고 평안한 상태다. 그 기쁨과 평안은 어디서 올까?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절대적인 기쁨과 평안을 누리기란 쉽지 않다. 산속에 들어가 홀로 사는 자연인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욕망을 좇는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행복이란 비교를 통한 상대적인 것이다. 아내가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있으면 의기소침해지고, 자신보다 어렵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활기를 찾는 것이 좋은 예다. 성인군자가 아닌 한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잘살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만큼 행복하지 못하다. 가진 것에 비해 욕망의 부피는 몇 배로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저께 기업의 경영자 연봉이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 할 맛을 잃었다고 한다. 연봉이 1억 가까이 되는 사람도 자신이 초라하고 불행하게 보인다. 그러나 밑을 내려다본다면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불행을 결정하는 건 비교와 상대다.

 

우리는 이미 비교와 경쟁이 내면화되어 있다. 현대는 행복도 오염되어 있다. 불행한 사람을 만나면 겉으로는 연민과 안타까움을 표시하지만 속으로는 그 불행이 자신을 지나쳐간 것에 대해 감사한다. 뒤돌아서서는 흐뭇한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행복한 사람을 만나면 왠지 자신이 초라해지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선택받지 못 한 것에 대해 신에게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다시 길거리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지요." 너무 속물적인 대답인가? 그러나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인간의 심보를 그대로 드러내는 진리인 것을.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의 고통  (0) 2014.04.23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0) 2014.04.18
덕분입니다  (0) 2014.03.17
하느님은 한 문을 닫으시면 다른 문을 열어주신다  (0) 2014.03.05
노인이 행복한 나라  (0) 2014.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