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생명이 자본이다

샌. 2014. 4. 29. 10:02

'생명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의 시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생명'과 '자본주의'라는 두 단어가 어떻게 연결될까? 지난 정권에서 만든 '녹색성장'이라는 이상한 용어와 닮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생명이 자본이다>는 이어령 선생의 최근작이다. 선생은 자본주의의 황혼이 다가오고 있다는 전제하에 생명 중심의 새로운 자본주의를 제창한다. 생명자본주의 사상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생명애(biophilia), 장소애(topophilia), 창조애(neophilia)의 세 가지 사랑을 중심 테마로 삼고 생명자본주의를 인문학적 입장에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선생은 일본의 사례를 든다. 일본에서 태풍이 불었을 때 과수원의 사과가 90퍼센트 가량 떨어졌다. 일 년 농사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떨어진 사과는 상품적 가치가 없어 팔 수 없다. 잼으로 만들어 팔거나 싸게 처분하거나 폐기하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이렇게 해서는 생산비도 나오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던 중 다른 사람들은 다 떨어진 사과만을 보고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사과에서 희망을 찾는다. 다른 사과와 달리 끝까지 떨어지지 않았던 사과의 정신력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만약 태풍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은 저 사과들을 '떨어지지 않는 사과'로 이름 붙여 팔면 보통 사과의 10배 가격으로 팔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낸다. 떨어지지 않은 사과를 인간에 비유하여 역경 속에서도 버티는 정신력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렇게 문화적인 상징성을 부여했을 때 거기서는 또 다른 문화적 가치, 정신적 가치가 창출된다. 태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 사과의 의지를 상품으로 만들었고 이 사과는 불패의 상징으로 수험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선생은 생명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상품을 바라본 예로 제시했다. 현재의 산업자본, 금융자본을 뚫고 나가는 힘은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자본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에 호소하는 마음의 인력, 상품에 문화적 가치, 고정가치, 생명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경제생활양식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생명자본주의가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은 실망이다. 이 정권에서 강조하는 실체도 잘 모르는 '창조경제'와 다를 바가 없다. 선생은 생명자본주의를 말하며 '생명도 살리고, 돈도 벌고'라는 표현을 썼다.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인 자본주의의 속성을 선생도 잘 알 것이다. 생명을 죽여서라도 이익을 내려는 게 자본주의다. 생명도 살리고 돈도 버는 게 과연 양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링거 한 병 꽂아서 병상에 누워 있는 자본주의를 잠시 연명시키려는 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지연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선생의 박학다식과 상상력은 대단하다. 금붕어에서 출발해 동서양의 온갖 사상을 종횡무진 누비고 재해석해서 이야기를 직조한다. 지식의 화려한 만찬을 즐기는 기분이다. 그러나 주제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산만한 감이 있다. 좀 더 발전되고 정제된 생명자본주의 사상을 기대한다. 그러나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을 죽이는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생명이 자본이다'가 아니라 '자본에서 생명으로'가 되어야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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