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100조분의 1

샌. 2014. 6. 22. 09:42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남자는 1회 사정할 때 약 2억 마리의 정자를 방출한다. 평생으로 따지면 2,000억은 된다. 반면 여자는 평생 500개의 난자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부모에 의해서 태어날 수 있는 인간의 수는 100조가량 된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올 확률은 100조분의 1이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주는 불교 설화가 있다. 어떤 사람이 구멍이 하나 있는 판자를 바다에 던졌다. 바다에는 눈먼 거북이가 살고 있는데 백 년에 한 번씩 물 위로 고개를 내민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거북 머리가 우연히 판자 구멍에 들어가게 될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그만큼 어려운 확률이라는 설명이다.

 

이 확률도 계산해 보자. 지구 표면적은 구의 면적 구하는 공식을 쓰면 간단히 알 수 있다. 바다 면적은 지구 표면적의 3/4이므로 계산하면 40조 제곱미터다. 판자에 뚫린 구멍이 지름이 1m 정도 된다면 거북이 머리가 우연히 판자 구멍에 들어갈 확률은 대략 100조분의 1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날 확률과 묘하게 일치한다.

 

재미삼아 해 본 계산이었는데 과학과 설화가 얘기하는 확률이 비슷하다는 게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신기하다. 정확히 말하면 앞의 경우는 무수한 경우의 수 중에서 내가 존재할 확률이고, 뒤의 경우는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로 의미가 다르기는 하다. 어쨌든 지금의 나로 존재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100조분의 1이란 0.00000000000001로 거의 0에 가깝다. 로또 1등 당첨이 연속으로 천만 번 일어나는 경우와 같다. 이런 확률로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

 

그런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살아가는 길 역시 무수한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걸어가고 있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현재 내가 걸어가는 길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유일무이한 길이다. 태어나서부터 가능한 다른 길이 아마 수천만, 수억 개는 있었을 것이다. 무슨 조화인지 그 모든 걸 제쳐놓고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이라는 의미도 이와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나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다 그러하다.

 

우리 우주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이런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무수한 다른 우주의 존재를 가정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자연상수가 조금씩 다른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지만 나 아닌 다른 누가 대신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존재는 특별하면서 또한 보편적이 아닐까, 내가 특별하다고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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