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시절이 하수상하니

샌. 2014. 5. 29. 08:34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제일 난세로 믿는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인간사가 원래 하루도 편할 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수십 년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매 시기마다 힘들고 어려운 무엇이 있었고, "세상이 왜 이래?"라는 한탄이 안 나올 때가 없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속세의 삶이 갖는 숙명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은 '시절이 하수상하다'는 탄식을 절로 나오게 한다. 연초의 경주 리조트 화재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지더니 최근에는 을지로 지하철 추돌, 고양터미널 화재, 도곡역 지하철 방화, 급기야는 요양원 화재로 스무 명 넘는 노인이 죽었다.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고, 또 어디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불안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너무 자주 터지니 이러다가는 우주인이 지구로 침공해 온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경천동지할 사건이 예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허둥대는 나라 꼴도 말이 아니다. 5개월에 16억을 벌었다는 전관예우에도 당당하게 총리 후보자로 추천된다. 여론에 밀려 사퇴했지만 국민의 화만 잔뜩 돋워 놓았다. 세월호 참사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은 검찰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못 잡는 건지 안 잡는 건지 헷갈린다. 구원파가 당당하게 내건 '우리가 남이가'라는 현수막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이젠 아주 공공연히 끼리끼리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세상, 철면피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이 다 그런 거야, 라는 말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한심한 현실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겠다고, 적폐를 도려내겠다고,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저들의 아성이 쉽게 무너지겠어, 다 한통속이 아니겠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는 점점 좌절로 변해간다. 물질의 풍요는 쉽게 얻었으나 정신을 개혁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어쨌든 하수상한 시절임은 분명하다. 허나 안달을 내서 무엇하리,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철인을 떠올린다. 탄식과 절망 속에서도 세상은 제 갈 길을 갈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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