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천장에 쥐가 산다

샌. 2014. 5. 22. 11:39

어린 시절 시골 초가집에 살 때 부모님은 천장에 사는 쥐와 자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쥐들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운동회를 하는지 천둥소리가 나기도 했다. 정 참다 안 되면 아버지는 "이누무 쥐새끼들!" 하며 빗자루 끝으로 애꿎은 천장만 때렸다. 그런다고 쥐가 사람 마음을 헤아려줄 리는 없으니 결국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쥐약을 놓기도 하고 고양이를 기르기도 했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안 되었다.

 

쥐약을 먹고 쥐가 죽으면 천장에서 썩는 게 아닌가, 그것이 어린 마음에 걸렸다.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보다 사실 그게 더 두려웠다. 어머니한테 물으니 쥐가 쥐약을 먹으면 목이 말라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초가집에서 살았던 시절에는 여러 동물과 공존했다. 초가지붕 안에는 쥐 외에 뱀도 있었고 참새도 있었다. 어른들이 지붕 끝 짚 속으로 손을 넣어 참새잡이를 하는 걸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니 쥐와도 적당히 타협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현대식 아파트 천장에도 쥐가 산다. 밤이면 유난히 시끄러워지는 것도 옛날의 시골집과 똑같다. 다만 덩치가 크고 사람 형상을 한 인쥐라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어제도 잠을 자다가 쿵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아마 아이가 의자나 침대에서 뛰어내렸을 것이다. 다시 잠들기 위해서는 인쥐 소동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 집 위층은 참 특이하다. 밤 11시가 되어야 활동을 시작한다. 조용한 시간대여서인지 일상에서 나오는 소음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러다가 새벽 1시가 되어야 겨우 잠잠해진다. 내 잠자리가 편안한지 아닌지는 윗집의 처분에 달려 있다. 심한 날은 나도 덩달아 깨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항의도 하고 사정도 했지만 이젠 포기했다. 윗집 생활 리듬에 맞추어 사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화가 나지만 쥐가 산다고 하면 참을 만하다. 쥐한테 화를 낸들 나만 바보가 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안 그런다면 계속 부딪쳐야 하는데 서로가 못 할 노릇이다.

 

다행히 윗집도 무지막지한 사람들은 아니다. 조심하는 기색이 보인다. 아래층은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밤늦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를 키워보면 알지만 조심을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나도 이웃에게 인쥐 노릇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이웃들이 이해해 주지 않았다면 편히 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사이는 다들 마음의 여유가 예전만큼 못 한 것 같다. 아파트 층간소음도 이웃 간에 역지사지로 마음을 열면 마찰을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 화가 날 때는 옛날 아버지처럼 "이놈의 인쥐 새끼들!" 하고 욕을 해주면 조금은 마음이 풀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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