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신동문 평전

샌. 2014. 7. 1. 10:29

신동문(辛東門, 1927~1993) 시인의 생애와 삶이 궁금해서 찾아 읽은 책이다. 10여 년 전 밤골로 들어갈 때 시인의 '내 노동으로'를 좋아해서 자주 읊었다.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시는 당시의 내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도시에서의 껍데기 삶을 미련없이 버린 뒤 농촌에서의 육체노동을 나도 꿈꾸고 있었다. 시인과 다른 건 나는 어설프게 제대로 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책에 소개된 시인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본명은 건호(建浩)이고 동문은 필명이다. 충북 청원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5세 때 청주로 이사했다. 어려서부터 결핵을 앓아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몸이 아픈데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중퇴했다. 이어 경희대학교에 편입학했으나 건강 문제로 다시 중퇴했다. 한국전쟁 때 자원입대해 전쟁과 기계문명의 비정함을 고발하는 연작시 '풍선기'를 썼다. 이 시가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4.19혁명을 계기로 서울에 정착하여 주로 정치권력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시를 썼다.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과 '내 노동으로'는 그의 대표작이다. 또 <새벽> 편집장, <창작과비평> 대표, 신구문화사 주간, 경향신문 특집부장을 지내는 등 언론인이자 출판인으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75년에는 모든 문학 출판 활동을 그만두고, 충북 단양의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난한 서민들에게 무료 침술 봉사를 했다. 1993년 담도암으로 작고했다.'

 

시인의 일생은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30대 초반까지 청주에서의 젊은 시절, 문학과 출판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서울 시절, 그리고 단양으로 귀농한 이후의 시절이다. 중심이 되는 건 역시 단양에서 농민들과 함께 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일찍부터 귀농을 꿈을 갖고 30대 중반께 단양 수양개에 야산을 사 두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며 개간해서 2만 평의 과수원을 만들고 사과와 포도나무 5천 그루를 심었다. 이런 준비 끝에 1975년, 시인의 나이 48세 때 완전 귀농을 한 것이다. 지금은 귀농이나 귀촌이 일반화가 되었지만, 당시에 귀농은 세상과 역행하는 길이었다.

 

시인은 생각보다 시를 많이 쓰지 않았다. 1967년에 쓴 '내 노동으로'가 마지막 시였는데 마흔에 이미 시 쓰기를 그만둔 셈이었다. 시인이 중요하게 생각한 삶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세상 사람들이 말한 은둔, 절필에 대해 시인은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평전을 읽어 보면 그런 말이 상당한 오해라는 걸 알게 된다. 시인은 독학으로 배운 침술로 단양의 주민들에게 봉사했다. 나중에는 침술가로 더 유명해졌다. 노동과 몸을 중시하는 삶을 직접 실천한 것이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구조적인 부조리에 맞서 인간이 주체적으로 대응하면서 복되게 살아가는 꿈을 꾸고 실천한 사람이 신동문 시인이다. 시인은 공상이 아니라 현실의 삶으로 그 꿈을 실현하려 했다. 그러나 농민들과 함께하는 자립 공동체는 충주댐이 건설되고 마을이 수몰되면서 포기했고, 나중에 예술창작마을에 대한 꿈도 담도암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꿈이 성취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거짓이고 그 세계의 가치가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될 때 지식인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그 답 중 하나를 시인의 생애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은이와의 생전 인터뷰에서 시인은 존재가 말에 의해 구속 당하게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우리가 하루하루 정직하게 살아갈 때, 말이 그 정직함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가능성은 날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인으로 하여금 글을 쓰지 않게 한 근본 이유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공허한 말이나 글보다는 실제 몸으로 살아가는 삶을 중시한 것이다. 시인의 말을 들어본다.

 

"말의 힘이 삶의 힘보다 커졌어. 이제 말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닌 거대한 권력이 되었어. 오래전에는 말의 힘이란 것이 육성이 도달하는 거리까지로 제한되어 있었을 테지. 이젠 말이 육성이나 입소문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어. 활자나 전파나 통신이 얼마나 빠르게 진화했는가. 그래서 말은 더 이상 개인의 진정성을 온전히 담을 수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게 됐어. 요즘의 말에는 개성이나 인간성이 좀처럼 엿보이지 않아. 여론이라는 게 뭔가. 말이 활자와 전파와 통신의 힘을 빌려 권력을 갖게 된 것이야. 거기에는 균일화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문만 무성할 뿐이야. 또 그 소문은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 일방적으로 퍼뜨려지기 때문에 인간의 진정성을 배려하지 않아. 삶은 말의 권력화에 의해 무기력해지고 있어. 말이 진화할수록 존재는 퇴화해."

 

이것은 1992년에 한 시인의 말이다. 지금은 상황이 그때보다 더 심각해졌다. 삶이 말에 억눌린 상태는 독재와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실 더 무섭다. 시인이 단양의 외딴 곳으로 이주해온 것은 말 대신 존재를 찾으려는 뜻이었다. 그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노동과 침술에서 찾았다. 그러나 바깥 세계는 그의 뜻대로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병이 마지막으로 시인을 무너뜨렸다.

 

시인의 대표시 '내 노동으로'를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책으로나마 시인의 삶을 알고 나니 시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시인은 군사독재 아래서 적당한 비판 글이나 쓰고, 술 마시고, 바둑 두는 자신을 꾸짖었다. 말장난이나 하면서 적당히 시류에 편승해 살아가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시다.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 내 노동으로 / 신동문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0) 2014.07.13
행복의 역습  (0) 2014.07.08
여덟 단어  (0) 2014.06.26
인기 없는 에세이  (0) 2014.06.21
콘택트  (0) 2014.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