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마음의 상처

샌. 2014. 8. 9. 11:04

"그땐 니가 어찌나 골을 내든지...." 지나가며 하는 어머니의 말이 아프다. 그 옛날 부모님은 억척스레 일을 하셨다. 자식 다섯을 모두 서울로 보내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밤에 고향집에 도착하면 집은 늘 캄캄한 채 텅 비어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논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자식을 위해 고생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자식을 집에서 맞아주지 않는 부모님이 미웠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아마 그때 심통을 부렸던 것 같다. 뭔 일을 밤낮없이 하느냐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부모님은 묵묵히 듣기만 했음에 틀림 없다. 그게 마음의 흔적으로 남아 40년이 지난 지금 조심스레 꺼내보이는 게 아닐까.

 

그때 철이 들고 속이 깊었다면 논으로 나가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는 게 옳았다. 집에서 기다리기만 하며 성질을 낼 일이 아니었다. 너무 고생하신다고 따뜻한 한 마디라도 건넸다면 부모님은 얼마나 감격하셨을까, 뒤늦게야 후회하지만 이미 흘러간 물이 되었다. 그때는 외지에서 공부한다고 어지간히 유세를 떨었던 것 같다. 저만 알았지 부모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는 불출이었다.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자식에 서운했던 게 어디 한둘이었으랴.

 

그게 부모와 자식의 다른 점이다. 자식은 어떤 식으로든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지만 부모는 속으로 삭인다. 어렸을 때는 주로 부모가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갑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이 성장하게 되면 쌍방간의 관계로 변한다. 애증이 교차하면서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도 서로가 내상을 입을 수 있다. 기억도 못하는 하찮은 것임에도 상대에게는 바윗덩어리가 되어 마음의 응어리로 평생 남게 된다. 누구나 그런 상처 한둘씩은 다 가지고 있다.

 

인간의 뇌는 특정의 상황을 너무 선명하게 기억하는 단점이 있다. 유별나게 어떤 하나가 상채기가 되어 괴롭힌다. 믿었던 가족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서운함을 느낄 때 그런 경우가 많다. 부모 자식 사이, 형제 사이에서 주로 생긴다. 잘못되면 상대를 원망하며 평생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요사이 유행하는 내 속의 어린아이에 대한 이해라든가 치유 프로그램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얽힌 실타래를 푸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우리집 아이들도 아빠 때문에 마음에 깃들인 그늘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자식 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 가슴에 꽂은 비수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괴로워서 제대로 숨 쉬기도 힘들 것 같다.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죄업이 크다는 걸 안다. 마찬가지로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도 있다. 사람이 산다는 건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인 것 같다. 이런 교환 관계로 살아가는 인간 존재가 무척 위태로워 보인다. 대체로 자신이 받은 상처는 크게 기억하지만 남에게 준 상처는 모르거나 무시한다. 내가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은 더 너그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참 복잡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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