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억울한 빌라도

샌. 2014. 8. 29. 07:50

빌라도만큼 억울한 사람도 없다. 기독교인들은 예배나 미사에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라며 신앙 고백을 한다. 전 세계 기독교인 숫자가 23억이니 주일날이면 적어도 수억 명이 예수의 고난이 빌라도 탓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이 빌라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를 구해주려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당시 유대교 성직자들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명목으로 예수를 붙잡아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겼다. 빌라도의 사형 판결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빌라도는 무력 투쟁이나 봉기를 하지 않은 예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예수는 로마 식민 통치의 위험인물이 아니었다. 빌라도는 예수가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는 것을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보시오, 저들이 당신을 갖가지로 고소하고 있지 않소?" 빌라도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자신에게 넘겼음을, 예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고 싶어 축제 때 죄수 하나를 사면하는 관습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군중은 반란군 살인자인 바라빠를 요구했다. 수석 사제들이 부추겼기 때문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요청에 빌라도는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단 말이오?"라며 화를 낸다. 그러나 빌라도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끄러워지고 소란이 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 통치자에게는 한 사람을 죽이고 군중을 조용하게 하는 게 중요했을 것이다. 빌라도는 종교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반면에 유대 기득권층은 예수로 인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자신들이 누리던 지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빌라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유대교 성직자와 어리석은 군중들 탓이다. 그런데도 개신교나 천주교 모두 신앙 고백을 할 때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한다. 성경과 다른 내용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배척하거나 그의 활동을 탄압한 적이 없다. 마지못해 내린 사형 선고에만 관계될 뿐이다. 빌라도는 예수 사건을 유대 민족 내부 문제로 보았다. 빌라도가 예수 고난의 상징적 인물이 된 건 아마도 기독교의 모태인 유대교와 유대인을 비난하지 않으려는 후대의 배려로 보인다. 제대로 하려면 빌라도의 이름을 빼고 "같은 동족에게 고난을 받으시고"라고 해야 옳다.

 

신앙 고백 문구만 보면 졸지에 빌라도는 예수를 죽인 주범이 되었다. 이천 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이름이 불명예스럽게 사람들 입에 오르는 게 얼마나 억울할까. 물론 죄 없다고 판단한 사람을 모른 체한 것은 지도자의 책임이다. 빌라도가 매우 냉혹한 인물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유대인을 대신할 속죄양을 찾은 게 빌라도라면 당사자에게는 가혹한 처사다. 빌라도야말로 빨리 명예 회복을 시켜주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마르코복음의 기록을 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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