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가슴 따스한

샌. 2014. 9. 21. 09:28

대안 미디어 '너머'에 재미있는 내용이 실렸다. '거리의 인문학자'라 불리는 최준영 님이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22명의 정치인에 대해 짧은 평을 한 것이다. <품인록(品人錄)>이라는 책을 소개하며 인물 품평이 중국 전통이었다고 한다. 공자도 자신의 문하생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을 간명한 말로 평가했다. "자로는 과감하다", "자공은 사리에 통달했다", "염유는 재주가 많다" 등이다.

 

문학적으로 멋진 건 루쉰의 천두슈(陳獨秀)와 후스(胡適)에 대한 비교 품평이다.

 

"두 사람의 도략을 창고에 비유한다면, 천두슈는 창고 앞에 '안에 무기가 가득 들어 있으니 조심하시오!'라고 쓴 깃발을 꽂아놓은 것 같다. 그러나 깃발과 달리, 막상 문을 열어보면 총 몇 자루에 칼 몇 자루가 전부라 사람을 허탈하게 만든다. 후스는 꼭꼭 걸어 잠근 문 위에 '안에 무기가 없으니 의심하지 마시오!'라고 쓴 쪽지를 붙여놓은 것 같다. 그러나 나 같은 이들로 하여금 그 말이 정말일까 싶어 문을 열어보게 만든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인물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래서 최준영 님은 정치권 인사들 중에서 대권에 도전할 의사를 가졌거나 대권주자로 꼽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품평을 했다. 짧지만 촌철살인으로 정곡을 찌른다. '잠재적 대권주자 22인에 대한 짧은 품인록'이다.

 

 

여권 잠룡 11인

 

김무성: 훤칠한 외모와 호방한 성격, 든든한 집안배경과 재력까지 갖춘 사람. 그러나 빈곤한 철학에서 나오는 천박한 언변으로 입만 열면 경쟁력이 깎이는 사람.

 

김문수: 서민적 이미지와 성실한 품성, 드물게도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였으나 진보에선 배신자, 보수에선 여전히 미심쩍은 사람.

 

정몽준: 축구협회장 시절 구축한 인맥 덕분인지 외교적 수완이 좋은 사람. 지나친 눌변에 재벌 출신 특유의 아집과 독선으로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람.

 

반기문: 뼛속까지 관료인 사람. 역대 최약체의 UN 사무총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귀국 후엔 대한적십자사 총재 정도를 하면 어울릴 사람.

 

원희룡: 남경필과 함께 당내 소장파의 한 축을 형성, 친숙하고 참신한 이미지를 구축함. 큰 선거의 경험이 없어 아직 단단한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

 

김태호: 그야말로 덩칫값 못하는 사람. 자기 관리가 안 되는 영원한 아마추어.

 

남경필: 소장파의 상징으로 승승장구. '수신'과 '제가'에 실패해 '치국' 대신 '치명상'을 입었으니, '평천하'보다는 '평정심' 찾기에 골몰해야 할 사람.

 

이완구: 이름만큼이나 의뭉스러운 사람.

 

이인제: 최다 당적 변경과 최다 대권 도전의 2관왕을 노리는 사람. 이쯤 되면 정치철새를 넘어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

 

유승민: 여권의 기대주. 아직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여권의 히든카드.

 

오세훈: 자기연민의 정치인이자 세기말적 낭만과 데카당스의 아이콘. 조직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정치로 주변을 당혹스럽게 하는 개인플레이의 대명사.

 

야권 잠룡 11인

 

박원순: '박원순'을 넘어서야 '박원순의 가능성'이 열린다. 시민운동가와 행정가를 넘어 '정치인 박원순'으로 거듭나야 할 숙제를 안을 사람.

 

손학규: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치다가 우선 자신부터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로 한 사람.

 

문재인: 제1야당 최대 계파의 수장이지만 정치력은 최악인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최고의 정치인 사람. 권력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권력을 잡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

 

안철수: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된 새정치의 열망을 '전유'하려다 몰락을 자초한 사람.

 

김부겸: 손학규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노무현의 길을 갈 것인가?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한 사람.

 

안희정: 영민한 '정치 아이돌'이자 차분한 품성을 가진 사람. 아직은 자기 정치를 시작하지 않은 원석.

 

정동영: 진보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현실 정치인 중 가장 진보적인 행보를 걷는 사람. 꺼지지 않은 휴화산.

 

정세균: 관리형 리더 혹은 전형적인 바지사장 스타일. 대권은 바지사장을 뽑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김두관: 스토리는 좋은데 스토리텔링이 안 되는 사람. 그동안 줄곧 자기 스토리를 까먹는 마이너스의 정치를 해온 사람.

 

박영선: 국회의원으로선 최고, 리더로서는 2% 부족한 사람. 절치부심, 다시금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상품 가치가 큰 사람.

 

유시민: '싸가지 없는 진보'의 원조. 정당 파괴자. 좋은 머리에 출중한 언변과 뛰어난 글발을 갖췄으나 가슴(감성)이 메말랐다는 평을 듣는 사람.

 

 

정치판을 보면 아무나 정치를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정치인을 욕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꿋꿋이 한 길을 가는 모습이 대단하다. 현실을 보면 좋은 사람과 좋은 정치인은 다른 것 같다. 인간적으로 좋다고 좋은 정치인이 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 모른다.

 

좋은 지도자는 정치적 능력에 앞서서 우선 가슴이 따스해야 한다. 누구 말대로, 머리가 나쁘면 똑똑한 참모를 두면 되지만 가슴은 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도자에게서 찬 바람이 쌩쌩 불면 국민이 피곤하다. 대화가 통하는 따뜻한 부모를 바라는 자식의 심정과 마찬가지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은 그 뒤 문제다. 아무리 봐도 22명 중에 '이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은 눈에 띄지 않는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는 국민이 키워낸다는 점에서 이들 역시 딱 우리의 모습 그대로다. 그나저나 여기에 거론되지 않아서 서운해할 사람도 여럿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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