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 장의 사진(19)

샌. 2014. 10. 16. 11:32

 

 

1974년에 초등학교에서 한 주, 고등학교에서 세 주동안 교생 실습을 했다. 우리는 다른 대학과 달리 초등학교 실습도 나간 게 특이했다. 실제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초등학교 아이들과 같이 지낸 것이었다. 고작 엿새만 있었는데도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굳이 초등학교 경험을 시킨 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무엇인지 느껴보라는 의미 같았다.

 

사대생 전부가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부속학교로만 실습을 나갔으니 한 학급에 열대여섯 명씩 배정되었다. 그러니 교생 실습이라기보다는 교육 현장 참관이라는 말이 옳았다. 실제 수업도 몇 번 하지 않았다. 담임을 대신하는 조종례도 돌아가며 하다 보니 고작 한두 번이었다. 얼렁뚱땅 보내도 아무 지장 없었다. 솔직히 교생 실습이라기보다는 놀러 다닌 기분이었다.

 

실습을 하며 선생 노릇이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 눈높이로 내려가서 함께 어울리는 게 잘되지 않았고, 가르치는 기술도 신통찮았다. 가만있어도 발령을 내주니 직장 구할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과연 교직을 택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그래서 4학년 2학기 때 부랴부랴 신학 공부를 하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신학으로 방향을 틀었으니 괴짜였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신학대학원에 합격은 했으나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하고 결국은 중학교 선생이 되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이다 보니 선생 노릇 열심히 하는 건 애당초 맞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항상 비주류였고 간부들의 눈 밖에 났다. 그렇게 시작된 교직을 그럭저럭 버텨나가며 30년 넘게 하고 퇴직했다. 미안한 건 학생들이다. 그들에게 열성을 다해 다가간 기억이 거의 없다.

 

35년간 선생을 했으면 담임도 많이 하고 제자도 많을 것 같지만 나는 극히 예외다. 꼽아 보니 담임을 한 횟수가 일곱 번밖에 안 된다. 고등학교에 있었던 20년 동안은 딱 세 번만 담임을 했다. 다행히 근무했던 데가 담임을 안 한다고 하면 대부분 들어주는 학교였다. 안 그렇더라도 나 같은 사람한테 억지로 담임을 맡길 교장은 없었을 것이다. 선생이면 다 알지만 교사 스트레스의 절반 이상이 담임 직무에서 온다. 선생의 기본이 담임인데, 나는 직장 생활 참 편하게 한 셈이다.

 

그래선지 날 찾아오는 제자는 없다. 많은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졌지만 이름이 기억나는 아이도 다섯 손가락 안쪽이다. 워낙 이름이나 얼굴 기억하는 데 젬병이긴 하지만 그만큼 아이들과 교류가 없었다는 뜻이다. 담임을 할 때 반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기 어려웠다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에 대해서는 많이 부끄럽다. 명퇴할 때 제 노릇 못하면서 직장에 붙어 있다는 데서 벗어나는 홀가분함이 제일 컸다.

 

그래도 옛날 근무할 때 사진을 보면 아련해지기는 한다. 이 사진은 Y여중에서 근무할 때 찍은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쯤 되었다. 나로서는 그 귀했던 담임을 하던 해였는데, 여자 교생 세 명이 우리 학급에 왔다. 너무 오래전이라 이름도 과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 달간 근무하고 학교를 떠나던 날, 반장 부반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그때 반장과 부반장은 무척 심성이 곱고 참한 아이들이었다. 교생 선생님 손에는 아이들로부터 받은 선물이 들려 있다.

 

마침 교생 선생님이 왔을 때 교내 합창대회가 있었다. 그때는 숙명여대 강당을 빌려서 합창대회를 했다. 여학교에서 합창대회는 큰 행사였다. 곡을 고르고 아이들을 연습시키는 데 이분들 도움이 컸다. 한 달 내내 대회 준비로 분주했다. 그리고 사소한 기억이 하나 남아 있다. 이분들과 중국집에 갔다. 아마 학급 지도교사라고 초대를 했을 것이다. 식사가 나오기 전에 누군가가 나무젓가락을 물컵에 담그더니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사람의 기억이란 게 참 묘하다. 보잘것없는 건 뇌에 저장되어 있고, 정작 중요하다 싶은 건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 뇌는 도대체 어떤 선별 기준을 가지고 기억을 저장하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분들, 지금은 50대 후반의 여인네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들이 교생 실습을 했던 그때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억도 세월이 흐르면 흐릿해진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만나고 헤어지고, 기억되고는 잊혀져간다. 세월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사람도 사건도 강물 따라 모두 떠내려간다. 강둑에 앉아 흘러가는 걸 바라보는 것 같지만, 나 역시 망연하게 흘러가는 건 마찬가지다. 과거의 어느 때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인연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리움에 젖는다. 추억은 그래서 따스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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