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빵집 / 이면우

샌. 2014. 9. 7. 10:12

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

큰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집 빵 사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 라고 씌여진 걸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속에서 읽었다 그래서

그 빵집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과

집 걱정하는 아이가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다

못 만나 봤지만, 삐뚤빼뚤하지만

마음으로 꾹꾹 눌러 쓴 아이를 떠올리며

 

- 빵집 / 이면우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시내 초입에 타이어 가게가 있다. 버스가 신호등에 걸려 멈추는 곳인데, 가게에 적힌 문구 하나가 늘 눈길을 끈다. "아기 우유값만 남기고 드립니다." 처음에는 가슴이 짠해서 쳐다볼 수 없었다. 자주 보니 조금은 덤덤해졌으나 밥벌이의 엄숙함과 처절함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여전하다. 가난한 이웃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우울해진다. 아무리 성실히 살아도 제자리걸음밖에 안 되는 세상이 밉다. 글은 벌써 몇 년째 똑같이 적혀 있는데, 이젠 아기가 자라 밥을 먹을 때도 되었건만 다시 둘째가 태어났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웃는다. 어찌 되었든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건 숨탄것들의 숙명이다. 모든 것이 거기서 시작되고 거기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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