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샌. 2014. 10. 22. 09:18

이런 류의 제목에 끌리는데 책을 읽어보니 정작 지은이는 엄청나게 바쁜 사람이다. 이것저것 오지랖 넓게 기웃거린다고 별명이 오지래퍼(Ozirapper)다. "범인(凡人)은 이해 못 할 시를 쓰고, 정부가 부숴버린 제주 바위 옆에 돈 안 되는 도서관을 짓고, 환쟁이들과 어울려 그림을 그리고, 영화판에 참견하고, 만화를 향한 연심(戀心)은 책 한 권이 족히 넘는 그는, 공사다망한 중에도 틈틈이 친구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는, 인생이 '작당'인 한량이다. 평생 멋대로 살아왔으나 잘못 살았던 적 없고, 누구도 설득하려 들지 않는 대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건축가이자 시인인 함성호 씨의 자기소개다. 역설적인 제목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은 재주 많은 이 분이 쓴 에세이집이다.

 

어느 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 스님은 태블릿 PC를 사용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는데 어느 분이 무소유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며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무소유는 소유의 여부가 아니라 집착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소유물에 매이지 않는 마음이 무소유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소유하되 소유하지 않은 무애의 경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일을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말도 성립한다. 일을 이루고 나서 이게 내 공이요, 하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일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외형적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수많은 모래성을 쌓으며 번뇌로 들끓는다면 그는 수많은 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다. 무위(無爲)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집착 없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뜻이다.

 

책 내용에서도 그런 면이 읽힌다. 행복은 삶의 최소주의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모으지 않고 쌓아두지 않고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삶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사회와 체제가 요구하는 기계의 부속품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세상은 넓고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킬 분야는 아주 많다. 다재다능한 지은이를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내가 가진 호미로도 충분히 인생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은 오직 자유인만이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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