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안도현의 발견

샌. 2014. 11. 3. 12:05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칼럼을 묶어 펴낸 책이다. 원고지 3.7매의 정해진 분량으로 호흡이 짧은 글이 모여 있다. '발견'이라는 이름은 시인은 발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데서 따왔다. 시인은 원래 있던 것 중에 남들이 미처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이 책은 안 시인이 근래 발견한 것들을 드러낸 것이다. 시인이 좋아한다고 말한 것처럼 거대하고 높고 빛나는 것들보다는 작고 나지막하고 안쓰러운 것들의 이야기다.

 

안도현 시인의 글은 시나 산문이나 감칠맛이 난다. 입에 착착 감긴다. 시인은 선 가늘고 예민한 여성적 감성을 가지고 있다. 시인이 세상이나 사물을 보는 눈을 통해 나도 배우는 게 많았다. 시각을 달리 해서 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다. 보는 것도 훈련이다. 관습적인 '봄'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는 게 나에겐 절실하다.

 

책에 실린 글 중에 네 편을 옮겨본다.

 

 

모기장

 

눈을 뜨면 모기장 안쪽 구석에 몇 마리 모기가 붙어 있었다. 낡은 모기장 안으로 밤사이 침입한 괘씸한 놈들. 이들은 배가 터질 듯이 빵빵해서 잘 날아다니지도 못했다. 손바닥으로 이놈들을 잡으면 선홍색 피가 묻어났다. 외할머니가 말했다. 내 아까운 피를 요놈들이 다 빨아먹었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에 모기장을 걷었고, 그리고 아침이 왔다.

방충망 대신에 모기장을 치고 모처럼 그 속에 들어가보는 건 아주 색다른 경험. 마치 모기장 왕국의 왕이 된 기분이 된다. 모기와 나방과 풍뎅이와 매미는 짐에게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것이로다. 엎드려 책을 읽는 일도 왠지 위엄과 기품이 있어 보인다. 아,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황당한 착각이라는 것을 잠시 후에 깨닫게 된다. 모기장을 쳤으면 불을 꺼야 하는데 형광등을 켜놓았으니 온갖 날벌레들이 모기장 바깥에 붙어 있다. 나는 겨우 책 몇 줄 읽고 있지만 그들은 아예 팬티 차림의 나를 내려다보며 송두리째 읽고 있는 게 아닌다.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영락없이 모기장 동물원에 갇힌 한 마리 서글픈 포유류가 아니던가. 모기와 나방과 풍뎅이와 매미에게 포위당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인간.

책을 덮고 생각해본다. 저 곤충 손님들에게는 내가 모기장 안쪽에 있을까, 모기장 바깥쪽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든 모기장 안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현명한 곤충 손님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너는 영원한 바깥이야.

 

 

내가 만약에

 

내가 만약에 열여덟 살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깨에 닿도록 머리를 기르리라. 축구를 할 때는 출렁거리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질끈 묶어보기도 하리라.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게 무엇인지 어머니께 분명하게 말씀드리리라. 책상 앞에 앉아 식물도감을 펼치기보다는 들길을 걸으며 허리 낮춰 들꽃들을 보리라. 마음을 흔드는 여자아이를 만나면 내가 먼저 말을 건네보리라. 그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리라.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한번 만져봐도 되냐고 물으리라. 귀뺨을 맞더라도 용기를 내보리라.

내가 만약에 열여덟 살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가 읽는 신문을 매일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으리라. 혼자 높은 데로 날아오르기 위해 공부하지 않고 여럿이 낮은 데를 살피기 위해 공부하리라. 밥상 앞에서는 고기를 덜 먹고 채소를 더 먹으리라. 쪽지 하나 남기지 않고 이유 없이 가출을 해보리라. 기차를 나고 가다가 허름한 역 대합실에 누워 날을 새워보리라. 새벽을 데리고 오는 첫 기차를 타리라. 휴전선으로 막힌 한반도가 서글픈 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뱅글뱅글 돌아다녀보리라.

내가 만약에 열여덟 살 소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최신 휴대폰이 없다고 안달복달하지 않으리라. 자전거를 타고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찾아가리라. 목덜미에 땀이 흐를 때까지 친구네 집을 향해 뛰어가리라. 숨 가쁘게 떨리고 설레는 시간들이 나의 편이므로 울고 싶은 때는 크게 울리라.

 

 

기도

 

긴 것은 기고 아닌 것은 아니다 말하게 하소서. 눈치 보느라 눈이 한쪽으로 몰려 붙은 도다리로 살아온 시간을 뉘우치게 하소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다시는 입 밖에 꺼내지 않게 하소서. 절실하게 사랑해야 할 것들과 죽도록 미워해야 할 것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하소서. 길이 없다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길이 되어 걸어가게 하시고, 내가 내 운명의 주인임을 아프게 새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바람 부는 날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게 내버려두시고, 어두워지면 우주의 어둠이 몸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게 하소서.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배기량 많은 승용차를 탄다고 해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칠점무당벌레의 삶보다 우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나의 밥그릇이 소중한 만큼 남의 밥그릇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소서.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울음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울음 소리로 우리가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남의 노래는 안 듣고 제가 부를 노래의 목록이나 뒤적거리는 노래방에서는 노래하지 않게 하소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게 하시고, 나뭇잎이 튕겨 올리는 햇빛 한 오라기도 감격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으로 하여 내 마음속 물관부에 늘 사시사철 서늘한 물이 흐르게 하소서. 당신과 나 사이의 아득하고 아득한 거리를 자로 재지 않게 하시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저울로 달지 않게 하소서.

 

 

소리

 

내가 사는 이 고장에는 없는 소리가 없다.

들녘이 지평선 펼쳐놓고 숨 쉬는 소리가 좋고, 들녘 사이로 강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좋고, 산들이 손과 손을 잡고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좋고, 서해 바다가 섬을 잠재우는 소리가 좋고, 밤마다 고군산도 섬들이 옹알이하는 소리가 좋고, 변산 앞바다 주꾸미가 입가에 달라붙는 소리가 좋고, 갯벌 바지락이 바닷물 빨아들였다가 뱉는 소리가 좋고, 춘향이 그네 탈 때 치맛자락 날리는 소리가 좋고, 덕진연못 연꽃 향기가 물 건너가는 소리가 좋고, 가을에는 내장산 단풍이 햇볕에 빨갛게 물드는 소리가 좋고, 겨울에는 무주 구천동 계곡에 눈 내려 쌓이는 소리가 좋고, 갑오년 농민군이 집강소 차리고 치켜든 횃불 타는 소리가 좋고, 진안 인삼밭의 인삼 뿌리 굵어지는 소리가 좋고, 금강 하구에서 숭어가 알 낳는 소리가 좋고, 장수 고랭지에서 사과 익어가는 소리가 좋고, 고추장 숙성되는 소리가 좋고, 콩나물 비빔밥 비비는 소리가 좋고,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손으로 입가를 훔치는 소리가 좋고, 한옥마을 김칫독에서 김치 익어가는 소리가 좋고, 판소리 추임새 넣은 소리가 좋고, 추임새 잘못 넣었다고 핀잔하는 소리도 좋다.

여기는 없는 소리가 없어서 귀가 즐겁다. 귀가 즐거우니 눈도 즐겁고, 덩달아 입도 마음도 즐겁다. '여기' 있는 소리가 '거기'라고 왜 없겠는가. 귀를 막고 싶은 일들이 많을수록 즐거운 소리를 찾아서 듣는, 또 다른 귀를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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