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시인 동주

샌. 2015. 5. 30. 08:41

안소영 작가가 시인 윤동주의 삶을 소설로 구성한 책이다. 스물여덟에 이국의 감옥에서 숨진 시인의 슬픈 일생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1938년 용정을 떠나 연희 전문 문과에 입학해서부터 일본 유학 중 반체제범으로 2년 형을 살다가 1945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대순으로 보여준다. 시대의 희생양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던 윤동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인이 살다간 시대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했다. 나라를 잃고 모국어로 시를 쓰지도 못하는 절망 속에서 시대의 아픔은 곧 시인의 아픔이었다. 시류에 영합했다면 자기 몸을 보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순수한 영혼은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저항하는 행동파는 아니었다. 어쩌면 관조적 자세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았다. 시인의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의 선한 마음이 우리의 본심을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 언덕이 있다. 왜 시인을 기리는 장소가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산 아래 누상동에서 하숙하면서 자주 들렀던 장소였다. 이때가 시인의 일생에서 가장 안정되고 행복했던 때였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인왕산에 올라 맨손 체조를 하며 문안 동네를 내려다 보았다. 시인은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 풍경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는 학교로 갔다.

 

하숙집 주인은 희곡 작가 김송이었다. 그는 총독부의 선전 도구가 되기 싫어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왔는데 요시찰인물로 찍혀 있었다. 그러니 시인과 대화가 잘 통했다. 안주인도 성악을 전공한 신여성이어서 시인을 이해했고 가족처럼 지냈다. 그러나 일제 말기가 되면서 점점 감시가 심해져 이 생활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시인이 감옥에서 사망한 원인이 조선인 죄수를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 탓이라고 밝히고 있다. 악명 높은 731부대 외에 일본 내에서도 만행이 이루어졌다. 시인이 주기적으로 맞은 주사는 생리 식염수였는데 당시 전장에서 혈장이 부족하자 식염수로 대체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기 위해 죄수에게 자행했다. 1945년 2월 16일, 결국 시인은 모든 감각을 잃고 감방에서 눈을 감았다.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못 되는 삶이었다.

 

1948년에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친구들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모두가 숨죽여 살아가던 암흑의 시대에 우리말로 묵묵히 시를 써 온 청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선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위안이 되었다. 이름난 문인들이 일제에 협력하며 호의호식할 때 이름 없는 청년 윤동주는 초라한 하숙방에서 우리말로 시를 썼다. 시인 윤동주는 폐허와 절망을 시대를 관통하는 한 줄기 유성이었다.

 

정지용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일제 헌병들은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일제 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뱉을 것뿐이나, 무명의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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