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프로 기사와 다면기

샌. 2015. 9. 20. 21:11

 

서울시의 차 없는 날 행사의 하나로 광화문에서 프로 기사와 일반인과의 다면기가 있었다. 프로 기사 100명이 나와서 시민 1,000명과 지도 대국을 가졌다. 프로 기사 한 사람이 열 명을 상대로 두는 것이다. 광화문 보도에 네 줄로 천 개의 바둑판이 놓여 있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두 주 전에 행사 소식을 듣고 나도 신청을 해서 참석했다.

 

우리 조에서 수고한 기사는 이동휘 초단이었다. 재작년에 입단한 젊은 기사인데 진지하게 바둑을 둬주어서 좋았다. 다섯 점을 놓고 시작했다. 프로 기사와는 처음 대국하기 때문에 무척 설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바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배우기 위해서 두기 때문에 승부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마를 죽이지 말자, 쌈지 뜨지 말고 중앙으로 나가자,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두었다. 다섯 점을 놓으면 어지간해서는 밀릴 것 같지 않은데 이 초단이 정수로 두는데도 이내 균형이 맞춰지는 게 신기했다. 바둑은 내 스타일대로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후반까지도 유리했는데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나와서 집을 많이 까먹는 바람에 지고 말았다.

 

대국 과정을 틈틈이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다섯 점을 깔아놓고 설마 지기야 하랴 싶었다.

 

 

평범한 진행.

 

 

좌하귀를 확실히 챙기고 싶어 선택한 정석인데 결과적으로 신통치 않았다. 하변에 백이 접근했을 때 오른쪽에서 받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우하귀를 손 뺀 대신 우변을 연속 두 칸 뛰어서 만족했다.

 

 

상변 백 돌 공격을 위해 좌변 손해를 감수했다.

 

 

하변 침입도 할 수 있어서 이때까지는 낙관하고 있었다.

 

 

돌연 마음이 바뀌어 우하귀를 지켰다. 하변 침입을 했어야 했다.

 

 

우변도 납작해졌다.

 

 

아직까지는 약간이나마 유리한 형세.

 

 

판은 거의 정리되었는데 이후로 결정적인 실수가 중앙과 좌상변에서 나와 승부의 균형이 기울었다. 두 군데서 스무집 가까운 손해을 보았다.

 

 

결과는 백 14집 승.

 

뒤돌아보니 어설픈 행마가 한둘이 아니었다. 자평하자면 이번 바둑은 기백이 부족했다. 프로 기사란 걸 의식하지 않고 둘 필요가 있었다. 반전무인이란 너무 먼 얘기다.

 

그러나 프로 기사와 바둑을 둔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의미 있었다. 바둑 TV로 보던 기사를 가까이서 만나는 기쁨도 컸다. 멀게만 느껴졌는데 직접 보니 모두 인간적이고 따스했다. 특히 여류 기사들은 하나같이 아담하고 예뻤다.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바둑을 두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수의 깊이는 한량이 없다. 프로의 정교함은 우리 같은 아마츄어가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우리가 볼 때 프로 기사는 하늘 같은 존재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공부에 끝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란 걸 자각한다. 어쩌겠는가, 소견 좁은 개구리로 살아가는 행복이나마 누리면 다행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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