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소 / 김기택

샌. 2015. 10. 26. 10:27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웅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꿈뻑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가 또 꺼내어 짓이긴다.

 

- 소 / 김기택

 

 

소나무는 한민족의 상징이다. 정서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나무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데 소만큼 소중한 가축도 없다. 소는 가족의 일원이었다. '소'나무와 '소'가 무슨 연관이 없을까, 고민한 때가 있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어스름 저녁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소의 워낭 소리가 들린다. 가마솥에서는 소죽이 김을 뿜으며 끓고 있다. 구수한 냄새가 마당에 가득 찬다. 대문 앞에서 소는 음매-, 하고 반갑다는 듯 발굽에 힘을 더한다. 외양간으로 들어간 소는 개선장군처럼 씩씩하다. 아직도 콧김이 씩씩거린다.

 

요사이는 농가에서 일손을 도우려 키우는 소는 거의 없다. 공장식 축사에서 사료로 길러진다. 작년인가 봉화의 농촌 지역을 지나다가 옛날식으로 외양간에서 기르는 소를 본 적 있었다. 소는 낯선 외지인에 경계하는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소의 눈에서 옛날 우리집 황소를 보았다. 여전히 순하고 슬픈 눈동자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지만 눈동자에 갇혀 있을 뿐인 크고 순박한 눈이었다. 눈물 자국이 마를 날 없는....

 

황소가 팔려 가던 날 나는 소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분명히 보았다. 동구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연신 들렸던 애처롭던 울음소리도 잊히지 않는다.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 머리도 집 쪽으로 돌리며 울었을 것이다. 소 눈동자에 새겨진 아득한 슬픔의 깊이를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어찌할까, 난 네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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