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선한 분노

샌. 2015. 12. 12. 09:29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사립 예술고등학교와 외국 대학에 다녔던 사람이 변했다. 자기계발서를 버렸고 혼자만 잘 산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성공하는 방법이 아니라 세상이 어째서 이토록 잘못되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때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가 계기가 되었다. <선한 분노>는 박성미 씨가 자본에 저항하는 불온한 사랑에 대해 쓴 책이다.

 

책은 사랑, 돈, 혁명의 3개 단원으로 되어 있다. 제일 긴 '돈'에서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의자놀이 게임과 폰지 사기와 같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자놀이 게임으로 끝없는 노동을 강요하고, 폰지 사기 게임으로 풍요롭다는 착각을 심는다. 사람들은 탐욕스런 경제 동물로 길러진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제 상황에 따라 곡예를 하며 살아남을 방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적당히 불안을 부추겨야 지탱되는 체제다.

 

지은이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으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게 아니라 '올바르게 살 자유'를 사람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다. 사람이 돈 위에 있게 하기 위한 대안이다. 지은이는 서른 살까지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를 했다. 일자리가 없을 때 버틸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기본소득이다. 이걸 나라에서 제공하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말하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때문에 회의적이 되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부양의 구조'나 '지출 구조'를 바꾼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엄청난 예산이 복지와 지원, 그리고 그 과정에 지출된다. 핀란드에서는 전 국민에게 일인당 백만 원씩의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며칠 전에 보았다. 기본소득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미래에 대해 불안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건 얼마만 한 축복인가.

 

책에는 혁명에 대한 멋진 정의가 나온다. "사랑이라는 가치를 돈의 위로 있는 힘껏 올려 놓는 것이 혁명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라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혁명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시스템은 경쟁으로 유지되고 사랑으로 깨진다. 매트릭스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위 1%를 바라보며 경쟁하게 만들면 충분하다. 그 대열에서 과감하게 이탈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자본주의는 깨질 수밖에 없다.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혁명이다.

 

만약 당신에게 공짜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며 온갖 유혹이 달려드는데 그것을 발로 차 버릴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뀐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당신이 발로 찰 수 없다면, 세상이 왜 지독히도 바뀌지 않는지 절감하게 될 것이다. 아파트 시세차익에 불나방처럼 뛰어들던 욕망이 오늘의 세상을 만들었다. 왜 불평등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굶어 죽고 자살하며, 왜 돈 앞에 사람 목숨은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되는지를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나쁜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 위에 탄탄하게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혁명하지 않으면 사회도 혁명할 수 없다.

 

지은이는 '여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가난해지는 것보다 바보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더 못 견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세상은 바뀐다. 사람들이 스펙이 없다는 사실보다 주관이 없다는 사실을 더 부끄럽게 여길 때 세상은 바뀐다. 재산과 지위를 잃는 것보다 어이없는 명령의 하수인이 되는 걸 더 불행으로 여길 때 세상은 바뀐다. 내 소유의 집을 갖는 것보다 내 소유의 영혼을 갖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길 때 세상은 바뀐다. 그때 사람이 돈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선한 분노>는 더 이상 무엇에 속지 말아야 하는가와 세상을 보는 시선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아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에 나선 한 용감한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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