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대한민국은 왜?

샌. 2016. 1. 3. 15:10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는 집단은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 쪽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면을 부각해 자기부정적 관점을 심어주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독재자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리고 진실은 늘 불편한 법이다.

 

김동춘 선생이 쓴 <대한민국은 왜?>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찾아본 책이다. 집권 세력이 볼 때는 매우 마땅찮아 할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는 강자는 무한대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반면, 약자는 비인적인 삶을 감수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이나 알 권리보다 권력자의 체면이, 국민의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이 중요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된다. 이런 나라를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라고 지은이는 묻는다.

 

8.15 해방이 외세에 의해 이루어지고, 곧이어 분단을 겪으면서 우리는 국가의 주인으로서 지위를 누릴 기회를 얻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반공과 경제 성장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았다. 친일 부역자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워지면서 식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된다. 이승만 정권은 민족 통일과 민권 보장을 주창한 우익까지도 배제하고 친일파 중심의 내각을 구성했다. 민족정기를 죽인 것이다. 그때 이래로 모든 정권은 겉으로는 반일을 외쳤지만 속은 친일이었다.

 

책에는 4.19 혁명 전 이승만 정부의 각료 12명 명단이 나오는데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대부분이 총독부나 관료, 일본 군인으로 봉공했던 사람들이었다. 친일파가 나라를 이끌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각 명단과 그들의 일제강점기 행적은 이렇다.

 

외무부장관 최규하 - 만주국 수습 관료

내무부장관 홍진기 - 총독부 사법관시보

재무부장관 송인상 - 식산은행 근무

법무부장관 권승렬 - 변호사

국방부장관 김정렬 - 일본 항공군 대위

문교부장관 최재유 - 의사

부흥부장관 신현확 - 일본 상무성 근무

농림부장관 이근직 - 강원도 원주군수

상공부장관 김영찬 - 조선은행 근무

보건사회부장관 손창환 - 의사

교통부장관 김일환 - 만주국 육군 대위

체신부장관 - 곽의영 총독부 충북상무과장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항일투사나 민족주의자는 철저히 배척되었다. 이승만 정권에 맞서서 민권을 외치던 조봉암은 간첩으로 조작되어 사형을 당했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미국을 사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았다. 친일에서 친미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진정한 독립은 오지 않았다. 헌법 선언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혼돈 속에 빠졌다. 그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류인 보수우익의 바탕이 그 세력인 것이다.

 

민주화 운동으로 어느 정도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회복했으나 대한민국은 이제 '기업 사회'가 되었다.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로 되었다. 가난으로 사람을 굶어 죽게 만든 북쪽 체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남쪽 사람들의 삶도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경제지상주의는 경쟁력 없는 가난한 국민들을 '잉여'로 취급한다. 국민주권과 시민권의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

 

지은이는 책의 마무리에서 미래의 대한민국을 그린다. 먼저 국가 위의 국가로 군림하는 공안기관의 권력남용을 막아야 한다. 검찰 수사와 행정 집행의 정치 편향, 미국 의존적인 국방 안보 논리, 군사주권 제약도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시장경제나 자본주의가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작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북한이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국가 연합 수준의 일치를 통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한반도에서 적대 관계가 종식되면 미국이나 일본 극우 세력의 입지도 약화될 것이다. 통합된 남북한이 되어야만 당당한 주권 국가로서 국제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한반도가 통일되고 평화, 민주주의, 정의에 바탕을 둔 공동체가 수립될 때 대한민국은 70년간의 반(半)국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온전한 국가는 균등, 화합, 안정, 그리고 정의가 동시에 보장되는 사회다. 민권 보장, 인민의 각성과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있어야 국가다운 국가가 된다. 민권이 보장되는 나라, 즉 인권과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진정한 선진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지금 우리의 상태를 통렬히 반성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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