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투명인간

샌. 2015. 12. 30. 10:01

소설을 읽으며 영화 '국제시장'과 내내 비교되었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얘기를 풀어가는 결은 다르다. 영화가 가족을 위해 고생하며 오늘의 풍요를 이룬 세대의 자부심을 그렸다면, 소설 <투명인간>은 시대의 아픔과 부조리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다. 이런 관점의 영화가 제작되어 '국제시장'과 대비시켜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여러 화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주인공은 만수다. 부자였던 할아버지가 일제 때 독립운동과 연관되어 재산을 다 잃고 화전민이 사는 산골로 숨어든다. 아버지는 이런 할아버지가 못마땅해 글공부는 버리고 억척같이 땅을 일구며 가족을 부양한다. 만수는 육 남매 중 둘째 아들이다. 외모는 볼품없고 형제들 중 머리도 제일 나쁘지만 심성은 착하기 그지없다. 오직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 그런 점에서는 '국제시장'의 주인공과 닮았다.

 

이런 캐릭터는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는 주변에 흔했다. 살아내기 위해서는 가족 중에 누군가는 희생의 짐을 져야 했다. 그러나 만수의 정신은 정치적인 의식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한다. 착하고 성실하다는 것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만수는 위화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과 무척 닮았다는 느낌이다. 운명에 순응하며 우마처럼 살다가 결국에는 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반면에 막내 석수는 일찍이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뜨고 반항하며 사회 운동에 나선다. 그러나 가족보다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사는 타입이다. 만수와 석수의 대조되는 삶의 방식이 흥미롭다. 둘 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 각자가 자기의 세계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인간의 한계인지 모른다.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은 우리 세대에게는 공감되는 내용이 많다. 특히 만수 형제가 산골에서 지나던 소년 시절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아련하고 흥미롭다. 60~70년대가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그려지고 있다. 재미로만 치면 소설 전반부가 낫다.

 

수많은 사람이 성장제일주의와 개발독재의 쓰나미에 휩쓸려갔다. 만수와 가족도 이름 없는 희생자들 중 하나다. '투명인간'이라는 제목은 그런 소외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오늘이라고 그리 다르지 않다. 잘 살아보자고 쉼 없이 달려온 결과가 고작 이런 꼴이란 말인가. 경쟁은 더 심해지고 미래는 불안하다. 점점 양극화되고 계급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좌절과 고통을 겪는 개인의 비명도 그치지 않는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척, 애써 외면할 뿐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한국현대사  (0) 2016.01.17
대한민국은 왜?  (0) 2016.01.03
라면을 끓이며  (0) 2015.12.22
여자의 탄생  (0) 2015.12.17
선한 분노  (0) 201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