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아름다운 얼굴 / 맹문재

샌. 2016. 2. 11. 19:42

아주 잠깐이었지만

대천 앞바다에서 윤슬을 바라보다가 깨달은 일은

아름답게 죽는 것이었다

 

소란하되 소란하지 않고

황홀하되 황홀하지 않고

 

윤슬이 사는 생애란 눈 깜짝할 사이만큼 짧은 것이지만

그 사이에 반짝이는 힘은

늙은 벌레가 되어가는 나를 번개처럼 때렸다

 

바람에 팔락이는 나뭇잎처럼

비늘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윤슬의 얼굴

너무 장엄해

나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대천 앞바다에서 윤슬을 바라보다가 깨달은 일은

아름답게 사는 일이었다

 

- 아름다운 얼굴 / 맹문재

 

 

고운 우리말 하나를 배웠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윤슬'이라고 한다. '물비늘'과 비슷하지만 '윤슬'이 좀 더 신비하고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시인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윤슬에 비해 인간의 생애란 얼마나 추레한가. 아주 드물게 사람의 아름다운 얼굴을 만날 때는 윤슬을 보는 것 이상으로 경이롭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눈 온다 / 황인숙  (0) 2016.02.23
비스듬히 / 정현종  (0) 2016.02.18
소스라치다 / 함민복  (0) 2016.02.04
깡통 / 곽재구  (0) 2016.01.30
뻔디기 / 서정주  (0) 201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