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봄눈 온다 / 황인숙

샌. 2016. 2. 23. 10:26

나무가 눈을 뜨면

저 눈(雪)은 자취도 없을 것이다.

나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눈.

자기를 깨운 것이

봄바람이거나 봄비이거나 봄볕인 줄 알겠지.

 

나를 깨운 것은

내가 막 눈을 뜬 순간

내 앞에 있는 바로 그가

아닐지도 몰라.

 

오, 내가 눈을 뜨기도 전에

나를 바라보다 사라진 이여

이중으로 물거품이 된

알지 못할 것들이여.

 

- 봄눈 온다 / 황인숙

 

 

우주에서 관측 가능한 물질은 전체의 5%도 안 된다. 95%는 우리가 모르는 암흑물질이다. 사람의 마음도 드러나 있지 않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다. 안 보이는 것,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실체는 그들이다. 눈에 보이고 감지되는 것은 존재의 극히 사소한 일부일 뿐이다. 너무 호들갑 떨지 말자. 거대한 침묵 앞에서 그저 두려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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