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오랑캐꽃 / 이용악

샌. 2016. 3. 28. 19:30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도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미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 보렴 오랑캐꽃

 

- 오랑캐꽃 / 이용악

 

 

오랑캐꽃은 제비꽃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제비꽃보다 오랑캐꽃으로 많이 불렀다. 오랑캐와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이름이 그리 되니 괜히 밉상 취급을 받는다. 우리가 오랑캐라 불렀던 여진족도 마찬가지다. 내 이해와 어긋나니 오랑캐라 불릴 뿐 핍박을 받도록 태어난 건 아니다. 중국이 우리를 동이(東夷)라 부르며 오랑캐 취급을 한 걸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된다. 도래샘, 띳집, 돌가마, 털미투리 대신 옹달샘, 초가집, 가마솥, 짚신이라 불러본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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