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대주(對酒) / 백거이

샌. 2016. 3. 17. 17:41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순간의 삶이거늘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지니

입 벌려 웃지 않으면 그야말로 바보

 

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痴人

 

- 對酒 / 白居易

 

 

첫 구는 <장자>에 나오는 예화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혜왕에게 대진인이 이 비유로 말한다.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가 있는데 촉씨라하고, 오른쪽 뿔에 있는 나라는 만씨라 부릅니다. 이들은 서로 땅을 다투며 수시로 전쟁을 하는데 전사자가 수만이라 합니다. 패배자를 쫓을 때는 십오 일 이후에나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우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달팽이 뿔 위의 다툼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하물며 재물의 많고 적음이야 티끌만도 못한 것이니 이 세상 웃으며 즐겁게 살자고 시인은 술잔을 마주하고 권한다. 도가의 인생관이 들어 있는 내용이다. 환락(歡樂)이라는 단어에서는 그리스의 쾌락주의자와도 닮은 데가 있다. 여기서 쾌락은 말초적인 만족이 아니라 정신의 희열을 의미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높고 넓은 시야를 통해 주어지는 즐거움이다. 선거를 앞둔 요사이 정치판도 무척 재미있다. 좀스런 저들의 가면놀이가 정말 웃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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