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사월 초파일 칠보사

샌. 2016. 5. 14. 18:06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칠보사(七寶寺)가 있다. 사월 초파일 오후에 연등 구경을 하고 싶어 칠보사로 향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절이 꽤 분주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오전 행사 뒤 대부분이 돌아가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연등은 기대보다 초라했다. 대웅전 앞에는 운동회가 열리듯 만국기가 펄럭였다. 스님은 평일인 듯 한가하게 산책하고 계셨다. 조계사 같은 큰 절의 화려한 연등이 너무 머릿속에 박혀 있었나 보다.

 

사실은 이런 작은 절이 정상인지 모른다. 시주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대형 절의 연등은 보기에는 장관일지 몰라도 너무 뻐기는 폼이 부담스럽다. 내 복을 기원하는 게 자랑일 수 없다. 만약 설법이나 설교, 강론에서 복을 바라는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교는 부처가 되고 싶은 사람이 찾고, 교회는 예수를 닮으려는 사람이 가면 된다. 자기를 내어주고 이타를 행하는 사람들이다. 기복을 내세우지 않으면 신자를 모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렸을 때 사월 초파일날 외할머니를 따라 절에 갔던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는 불교 신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부처님께 기도하거나 절하는 걸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에는 목욕재계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절을 찾으셨다. 동네 할머니들이 다 그랬다. 산모퉁이를 돌면 '청계사'라는 조그만 절이 있었다. 주변에 바위가 많아서 할머니를 따라간 우리는 바위를 타고 재미있게 놀았다. 절이든 어디든 동네를 벗어난 바깥나들이 자체가 즐거웠던 때였다.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따라가고,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불러주고 선물을 받았다. 절에만 다니고 교회에만 다닌다는 게 어린아이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종교가 교리에 갇히면 죽는다. 굳은 교리에는 생명이 없다.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 마찬가지다. 석탄일이나 성탄절은 종교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되어야 한다. 연등을 바라보며 청정무구심, 반야, 열반 같은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를 넘어서는 세계를 가리키신 그분을 생각한다.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가? 궁구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 줄 알지만 살아 있는 한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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