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사는 맛 / 정일근

샌. 2016. 6. 16. 09:44

당신은 복어를 먹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복어가 아니다, 독이 빠진

복어는 무장해제된 생선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독이 든 복어를 파는

요릿집이 있다고 한다, 조금씩

조금씩 독을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 고수가 먹는 것이 진짜 복어다

맛이란 전부를 먹는 일이다

사는 맛도 독 든 복어를 먹는 일이다

기다림, 슬픔, 절망, 고통, 고독의 맛

그 하나라도 독처럼 먹어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사는 맛도

독이 빠진 복어를 먹고 있을 뿐이다

 

- 사는 맛 / 정일근

 

 

혀에는 미뢰가 있어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매운맛 등을 느낀다고 한다. 인생의 맛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단맛만 밝히면 절름발이가 된다. 독이 든 복어를 먹는 사람처럼 삶의 고수는 짜고, 쓰고, 시고, 매운 인생의 맛도 즐기는 사람이 아닐까. 설사 즐기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해도 넉넉히 감내할 여유는 가졌으면 좋겠다. 편하고 따스한 데만 밝히며 경망스럽게 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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