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공부하면 는다

샌. 2016. 8. 10. 09:10

지지옥션배 바둑대회는 남자 기사와 여자 기사의 단체 대항전이다. 각 12명씩 연승 방식으로 대전한다. 남자와 여자의 기력 차이가 있으니 남자는 40세가 넘어야 참가할 수 있다. 지금 10회 지지옥션배가 진행되고 있는데 1장으로 나온 서봉수 9단이 9연승을 했다. 어제 오유진 2단에게 져서 10연승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9연승도 대단한 기록이다.

 

바둑에도 전성기가 있다. 타이틀 홀더는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다. 30대가 되면 힘을 못 쓴다. 머리로 하는 싸움인데도 바둑 역시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현대 바둑의 짧은 제한시간에 있다. 대전 방식의 문제가 크다. 나이가 들면 집중력이나 순발력이 떨어진다. 특히 초읽기에 들어가면 두뇌 회전이 젊은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엉뚱한 실수가 나온다. 만약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면 나이 든 기사도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하면 는다." 서 9단이 자주 하는 말이다. 서 9단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기사도 없다고 한다. 지금도 매일 젊은 기사들과 기보를 연구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손주뻘 기사한테도 거리낌 없이 묻는다고 한다. 그래선지 서 9단의 실력은 장년 이상의 기사 가운데서는 발군이다. 이번 9연승도 이변이 아니다.

 

정상에 올랐던 기사도 공부하면 계속 실력이 는다는데 아마추어에게는 말할 나위도 없다. 늘지 않는 건 나이가 들었다고 지레 포기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새로운 취미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해서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친구가 많다. 공부하면 는다는 건 확실하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다. 나이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물론 어느 단계에 이르면 정체기를 겪는다. 그 고비를 넘기기가 어렵다. 바둑에서는 7급과 3급의 벽이 있다. 어느 정도 바둑을 두면 7급에는 누구나 도달한다. 그 이상이 되려면 바둑책을 보고 공부를 해야 한다. 3급을 돌파해서 1급이 되는 건 더 힘들다. 반 미쳤다는 소리는 들어야 한다.

 

어느 단계에서나 바둑 두는 재미는 대동소이하다. 10급은 10급 나름의 재미가 있고, 1급은 1급대로의 재미가 있다. 그냥 제 수준에서 만족하며 놀겠다고 해도 된다. 그런데 가장 큰 재미는 자신의 실력이 늘어나는 걸 지켜보는 재미다. 맞수를 제치고 앞으로 나갈 때의 희열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이 공부하는 자극제가 된다. 그리고 공부하면 무조건 는다.

 

바둑에 다시 취미를 붙인지 5년이 되어 간다. 처음에 정선으로 두던 상대가 지금은 호선으로 해도 넉넉해졌다. 전에는 정선일 때도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바둑TV도 보고, 바둑책도 여러 권 공부했다. 다른 사람은 공부까지는 하지 않는 것 같다. 덕분에 0.5점에서 1점까지는 실력을 올린 것 같다. 느리긴 하지만 공부하면 느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은 평생을 공부하고 배우는 존재다. 배우고 노력하지 않으면 진보할 수 있다. 공부하는 건 남을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장을 바라보는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학문만이 공부가 아니다. 일상의 삶 모든 것이 공부의 대상이다. 그리고 공부는 즐거워야 한다. 제가 좋아서 하는 공부, 그리고 진보하는 기쁨, 우리 삶의 행복은 여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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