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시간강박증

샌. 2016. 9. 7. 10:57

많은 사람이 날 느긋할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무척 화를 잘 내고 조급하다. 나이 들면서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가끔 불뚝 성질이 튀어나온다.

 

그중에 가장 큰 단점은 기다리질 못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음식점엘 갔다가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고 악을 썼더니 홀 안의 손님이 다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는 금방 후회한다. 아내는 부끄럽다고 질색이다. 조금만 더 참을 걸,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이다. 느긋이 기다려주지를 못하니 그런 사람과는 꼭 마찰이 생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잃었다. 아마 상대편에서는 뭐 저런 소갈머리가 있나, 하고 욕을 했을 것이다.

 

남에게 시간 지키기를 요구하는 것만큼 나 자신에게도 엄격하다. 약속 장소에 갈 때는 혹시 시간에 늦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대체로 일찍 나가지만 어떤 때는 아슬아슬한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조바심으로 안절부절못한다. 남을 비난하면서 내가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스스로 '시간강박증'이라 이름 붙였다.

 

다른 사람처럼 느긋해지고 싶지만 안 된다. 큰일에는 느긋하고 여유만만인데 유독 작은 일에는 신경이 예민하다. 작은 일에 쉽게 분개하는 내 자신이 너무 밉다. 큰 병폐다.

 

나는 원판불변의 법칙을 믿는다. 날 보면 안다. 사람의 타고난 천성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유전자를 바꿔치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어리석다.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해서 유효적절하게 대응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 것이다.

 

모임에 꼭 늦게 나오는 친구가 하나 있다. 20분 정도 늦는 건 예사다. 그 친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꽤 받았다. 그러나 이젠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냥 출발해 버리고 뒤따라오라 한다. 그러면 서로가 덜 피곤해진다. 지난번에는 그 친구에게만 약속 시간을 30분 일찍 통보해 주었다. 미리 나와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통쾌했다. 두 번 다시 속지는 않겠지만 이런 복수라도 해야 내 시간강박증도 고분고분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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