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붉은 마침표 / 이정록

샌. 2017. 5. 29. 10:44

그래, 잘 견디고 있다

여기 동쪽 바닷가 해송들, 너 있는 서쪽으로 등뼈 굽었다

서해 소나무들도 이쪽으로 목 휘어 있을 거라,

소름 돋아 있을 거라, 믿는다

 

그쪽 노을빛 우듬지와

이쪽 소나무의 햇살 꼭지를 길게 이으면 하늘이 된다

그 하늘길로, 내 마음 뜨거운 덩어리가 되어 타고 넘는다

송진으로 봉한 맷돌편지는 석양만이 풀어 읽으리라

 

아느냐?

단 한 줄의 문장, 수평선의 붉은 떨림을

혈서는 언제나 마침표부터 찍는다는 것을

 

- 붉은 마침표 / 이정록

 

 

울산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 서쪽 낮은 산에 걸린 붉은 해를 마주보며 달렸다. 고속도로는 석양빛을 반사하며 붉게 빛났다. 마치 레드 카펫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석양 풍경은 언제나 비장하고 장중하다.

 

석양을 '붉은 마침표'로 본 시인의 시각이 새롭다. 태양의 행로는 한 줄의 문장이고, 석양은 혈서의 마침표다. 동과 서로 나뉜 세계는 이승과 저승인지 모른다. 생에 봉해진 메시지는 그리움과 견딤일까, 붉은 마침표가 순식간에 산 뒤로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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