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굴뚝 / 윤동주

샌. 2017. 6. 12. 09:59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웨인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굴뚝 / 윤동주

 

 

동생은 새집을 지으며 군불을 때는 방을 만들었다. 한쪽 벽으로 아궁이와 굴뚝이 있다. 어머니를 위해서다. 마당에는 어머니가 해 놓으신 나뭇더미가 있다. 오래된 나무는 한쪽에서 삭아간다.

 

이젠 사라진 풍경이 되었지만 취사와 난방을 전부 땔감으로 하던 시절에는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뒷산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모았고, 어른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민둥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식 주택에서 굴뚝은 여유의 상징이다. 쓰지도 않는 굴뚝을 장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시를 읽을 때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림의 주색 역시 이 시와 일치한다. 가난의 색깔이지만 오순도순한 인정이 느껴진다. 우리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내가 클 때는 굴뚝 청소부라는 직업이 있었다. 가끔 골목에서 굴뚝 청소부는 검은 그을음으로 덮인 옷을 입고 어깨에는 둥글게 감은 긴 줄을 맸다. 굴뚝 청소할 때 쓰는 도구였다. 그리고 손에는 징을 들고 있었던 것 같다. 징을 치면서 자신이 왔음을 알렸던 것 같다. 찰스 램이 쓴 '굴뚝 청소부 예찬'이라는 산문이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굴뚝 청소부 예찬

 

나는 굴뚝 청소부를 만나보고 싶다. 오해는 마시라. 어른 청소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나이든 청소부는 아무래도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앳된 청소부, 엄마가 씻겨준 세수 자국이 아직 볼에 남아, 갓 묻은 숯검정 사이로 발그레한 보조개를 드러내는 어린 청소부들이다. 그들은 동이 틀 무렵 아니면 더 일찍 일어나서 앳된 목소리로 "굴뚝 청소합쇼"하고 외치고 다니는데, 그 억양이 마치 어린 참새가 '짹짹'하고 지저귀는 소리와 같다. 아니, 흔히 해뜨기 전에 굴뚝 꼭대기에 올라 서 있으니 새벽 종달새라 함이 어쩌면 더 적절하지 않을까? 공중에 나타난 이 어습푸레한 반점 - 아니, 가엾은 얼룩이랄까 - 이 철부지 검둥이들이 나는 진정 그립다.

우리와 혈통이 같으면서도 아프리카 토인처럼 까만 이의 아이들, 뽐내지 않고 검은 제의를 입고서 섣달 아침 살을 에는 바람을 맞으면 그 작은 제단인 굴뚝 위에서 인류에게 인내의 교훈을 설파하고 있으니 아기 목사님들이라 해야 할 아이들을 나는 존경한다.

어렸을 때 본 그 아이들의 작업 광경은 얼마나 신기했던가! 우리 자신보다 크지 않은 어린아이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지옥의 목구멍' 같이 생긴 굴뚝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그 어둡고 숨이 막혀버릴 듯한 동굴, 그 끔찍스런 어둠 속을 탐색하면서 이리저리 더듬고 다닐 그들이 어디쯤 있을까 하고 마음속으로 추적하던 일, '이젠 정말 다시는 영영 나오지 못할고 말 것이다'로 생각하고 몸서리치다가도 다시 햇빛을 보고 내뿜는 그 가냘픈 목소리를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해 문 밖으로 달려 나가 까만 귀신처럼 멀쩡히 나타나서  정복한 성채 위에 깃발을 휘날리듯 의기양양하게 청소용 솔을 들어 휘두르는 모습을 때맞추어 본다는 것은 참으로 신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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