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쁜 엄마 / 고현혜

샌. 2017. 6. 18. 10:42

이런 엄마는 나쁜 엄마입니다

 

뭐든지 맛있다고 하면서 찬밥이나 쉰밥만 드시는

옷이 많다고 하면서 남편의 낡은 옷까지 꿰매 입는

아픈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밤새 끙끙 앓는 엄마

 

평생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않고

왠지 죄의식을 느끼며

낮은 신분으로 살아가는 엄마

 

자신은 정말 행복하다고 하면서

딸에게 자신의 고통이 전염될까 봐

돌 같이 거친 손과 가죽처럼 굳은 발을 감추는 엄마

 

이런 엄마는 정말 나쁜 엄마입니다

 

자식을 위해 모두 헌신하고

더 줄 게 없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어느날 갑자기 눈을 뜬 채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엄마는 정말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뜻한 밥을 풀 때마다

고운 중년 부인의 옷을 볼 때마다

뒷뜰에 날아오는 새를 "그랜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식 가슴에 못 박히게 하는 엄마는 정말 정말 나쁜 엄마입니다

 

난 여러분께 나의 나쁜 엄마를 고발합니다

 

- 나쁜 엄마 / 고현혜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엄마라고 다 갸륵한 사랑만 품고 있을까? 자식에 대한 지극정성을 모두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꺼풀 벗겨보면 엄마의 욕심일 수도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자식을 위한다'는 말에도 함정이 있다. 희생이나 간섭이나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자식이 성인이 되었는데도 품에서 떠나보내지 엄마의 마음은 한 인격체로서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하늘이 내린 모성애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시인의 '나쁜 엄마'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현대의 엄마상은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면서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는 엄마다.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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