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채련곡 / 허난설헌

샌. 2017. 7. 1. 11:24

秋淨長湖碧玉流

蓮花深處繫蘭舟

逢郎隔水投蓮子

或被人知半日羞

 

- 採蓮曲 / 許蘭雪軒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물 건너 님을 만나 연밥 따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

 

- 채련곡 / 허난설헌

 

 

허난설헌이 지었을까,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요염하다. 중국풍의 느낌도 난다. 여인의 연정과 수줍음이 연꽃을 소재로 잘 그려져 있다. 때는 가을, 연꽃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미 연밥이 여무는 호수다. 호수에 배를 띄운 여인은 물 건너 사랑하는 낭군을 보고는 연꽃 열매를 따서 던진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조선 시대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나절이나 부끄러웠을까? 아마 몰래 배 위에서 만나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닐까? 그래야만 더 어울릴 것 같은 난설헌의 시다.

 

연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조만간 가까운 세미원으로 꽃구경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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