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피타고라스의 가르침

샌. 2017. 5. 31. 08:36

피타고라스는 신비에 싸인 인물이다. 피타고라스가 살았던 시대는 BC 500년경으로 그 시대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물론 그의 저작도 없다. 피타고라스는 그리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이집트 등 선진 나라를 전전하며 지식을 습득했다고 한다. 뒤에 이탈리아 크로토네에서 피타고라스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말미에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이라는 항목이 나온다. 책에서는 피타고라스를 거의 신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다. 피타고라스는 독특한 심안(心眼)을 가지고 사물의 본질과 원리를 터득했다고 한다. 희대의 천재성에 지칠 줄 모르는 탐구의 열정이 더해졌다. 그가 이해하는 우주를 보면 신비주의자를 닮았다.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피타고라스의 가르침 중 일부를 옮겨본다.

 

"그대들이여, 음식으로 그대들 육체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곡식이 있고,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린 과실이 있고, 포도덩굴에서 부풀어오르는 포도가 있습니다.... 우리 몸을 살찌우기 위해, 우리의 탐욕스러운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동물의 살을 먹다니, 이 어찌 사악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산 것이 죽은 것을 먹다니, 이 어찌 사악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양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대접합니까? 인간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이 평화스러운 동물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그 풍만한 젖으로 우리에게 양유(羊乳)를 주고, 그 부드러운 털을 우리의 옷감으로 주는 이 양, 죽어서보다는 살아서 인간에게 더 유익한 짐승이 왜 죽어야 합니까? 그토록 양순하고 순진한 동물인 소는 인간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런 신세가 되어야 합니까? 인간은, 대지가 베풀어주는 곡식을 먹을 자격도 없는, 참으로 배은망덕한 동물이 아닙니까? 소의 목에다 쟁기띠를 매어 굳은 대지를 갈고, 여기에서 곡식을 수확한 인간이, 이번에는 그 쟁기띠를 벗기고 그 벗긴 자리를 도끼로 내리칩니다. 이런 인간이 배은망덕한 동물이 아닙니까?"

 

"모든 것은 변할 뿐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혼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알맞은 형상이 있으면 거기에 깃들입니다. 짐승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있다가 짐승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고 돌 뿐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대들에게 경고합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음식으로 삼음으로써, 인간이라는 고귀한 지위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잔인무도한 살륙으로, 인간의 혼과 똑같은 혼을 그 거처에서 쫓아내는 짓을 삼가십시오. 피로써 피를 살찌우면 안 됩니다."

 

"처음의 모양대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조화는 끊임없이 이 물건으로 저 물건을 지어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변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하여 이것이 될지언정 그 합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하늘 아래 있는 만물은 다 끊임없이 변합니다. 땅과, 땅 위에 있는 만물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피조물의 하나인 우리 인간도 변합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육체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날개 달린 영혼도 여기에 깃들여 있습니다. 날개 달린 우리의 영혼은 들짐승의 가슴을 찾아들어갈 수도 있고, 가축의 가슴을 찾아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짐승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짐승의 몸에 어쩌면 우리 부모형제나, 우리 친척, 우리와 같은 인간의 영혼이 깃들여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이라는 이 예사롭지 않은 지위를 불명예스럽게 하거나 튀에스테스식 식사로 우리의 배를 채우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맙시다."

 

"나지막하게 우는 송아지의 목을 칼로 도리고, 어린아이처럼 우는 어린양을 죽이고, 제 손으로 기르던 새를 잡아먹는 인간, 이 얼마나 못된 버릇입니까? 같은 인간의 피를 보려고 예행 연습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러한 인간에게 살인은 짓기 어려운 죄가 아닙니다. 자, 이런 식으로 가다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에게는 쟁기나 끌게 하십시오. 그러다 나이를 먹어 죽게 되면 그 죽음을 슬퍼해 주십시오. 양으로부터는 우리를 북풍에서 지켜줄 양털이나 얻어냅시다. 염소로부터는 젖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짐승을 속이는 함정이나 올가미나 그물 같은 것은 이제부터라도 쓰지 마십시오. 깃털을 뽑아 만든 가짜 새로 새들을 속이지 말고, 소리로 유인하여 사슴을 죽이지 말며, 꼬부라진 낚시 바늘을 미끼로 감춰 물고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그 고기가 우리 입으로 들어가게 하지는 마십시오. 거친 음식으로 만족하십시오."

 

길게 이어지는 피타고라스 가르침의 대부분이 만물은 유전(流轉)한다는 설명과 육식에 관한 비판적 내용이다. 만물은 형태를 바꿀 뿐 본질의 합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현대 과학의 관점과 같다. 피타고라스는 이미 그 당시에 태양중심설을 믿었다고 한다. 이천 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피타고라스는 육식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길고 간곡하게 설명한다. 그 기저에는 생명 존중 사상이 깔려 있다. 모든 동물은 영혼이 깃드는 거소다.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 그러므로 함부로 살생해서는 안 된다. 고대에 이런 인식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인류가 실천하자면 앞으로 수백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아마 피타고라스가 현대의 산업식 축산 시스템을 봤다면 질겁할 것이다.

 

피타고라스와 제자들은 채식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한다. 영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피타고라스는 여자를 남자와 동등하게 대우했다고도 전해진다. 이 역시 선구자적인 행동이다. 피타고라스는 우주를 수와 음악으로 이해하려 했다. 당시로서는 독창적이며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었을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영향은 16세기 케플러에게까지 이어진다.

 

2,500년 전 인물의 말을 오비디우스의 입을 빌리긴 했지만 들어볼 수 있어 좋았다. 그의 가르침이나 종교적인 수행 방법 등은 서구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너무 시대를 앞서면 배척을 받기 마련이다. 피타고라스의 죽음도 그러했다. 그 옛날에 이런 보편적 생명 존중 사상을 펼쳤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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