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대물림

샌. 2017. 7. 5. 09:45

어렸을 때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어쩌다 아버지 옆에서 잠자게 되면 숨소리조차 내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따라서 아버지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서워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들은 기억도 별로 없는데, 그냥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서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셨다. 동네 사람들도 아버지를 어려워했다고 뒤에 들었다. 아버지가 길을 가시면 미리 피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면장으로 계실 때 지역 국회의원이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국회의원이라고 내가 왜 마중 나가냐며 아버지는 면장실에서 그를 맞았다고 한다. 그만큼 꼿꼿하신 분이었다.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바가 한둘이 아니다. 그중 하나가 자식을 너무 엄하게 기른 것이다. 얼마 전에 둘째가 하는 어린 시절 얘기를 들었다. 내가 거실에 있으면 무서워서 방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물이 먹고 싶은데 참느라 혼났다고 했다. 설마 그 정도였을까, 이젠 엎은 물이 되어 버렸다.

 

무서운 아버지가 판박이로 대물림 되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패는 걸 보며 자란 아들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결혼하면 아버지를 그대로 닮는다고 한다. 비극의 대물림이다. 인연의 과보는 당대만이 아니라 자식 대로 이어진다. 다시 장가가고 아이를 낳더라도 다정한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다.

 

그런데 동생은 그렇지 않다. 자식과 대화도 잘 하고 아주 친하다. 딸과 만나면 포옹으로 반긴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 둘째는 장남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라는 것 같다. 따라서 아버지의 기대도 덜 하다. 그런 환경이 둘째의 성격을 장남과 다르게 만드는지 모른다. 같은 형제지만 첫째와 둘째는 다르다. 부모의 태도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생의 굴레를 쓰고 있다. 나도 내 자식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은 타인에 대한 가해자면서 피해자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듯, 우리가 맡는 역할도 선택할 수 없다. 좋지 못한 업의 유산도 마찬가지다. 유전자로 번식하는 생물체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은 온전히 믿을 수 없다. 몇 개의 강렬한 기억이 상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아버지가 엄하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아끼고 포근하게 감싸준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부정적인 기억이 뇌세포를 점령하고 있다. 내 못난 행동의 책임을 윗대에 전가하려는 심리 기재가 아닌지 의심이 된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도 있다.

 

그렇다고 자식에 대한 내 잘못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결혼은 했지만 부모로서의 자격이 없는 부모도 많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아이를 키울 때는 내 양육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식은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옛 가르침을 순종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아이들에게는 아직 상처로 남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되돌릴 수 없는 과오였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한때 있었지만 지금은 해소되었다. 이젠 아버지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당신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니 도리어 아버지가 안쓰럽다. 내 자식도 그렇게 마음으로 화해할 날을 기다려 본다. 우리 아빠가 겉으로 보이던 그런 사람은 아니었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동병상련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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