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안녕, 내 모든 것

샌. 2017. 9. 4. 11:22

정이현 작가의 글을 읽고 싶어 임의로 골라본 책이다. 전에 읽었던 '삼풍백화점'이라는 단편이 생각났고, 다른 작품은 어떨까, 라는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90년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미, 준모, 지혜의 성장담이라 할 수 있다. 무대는 역시 강남이다.

 

세 아이는 모두 하나씩의 아픔을 갖고 있다. 그것이 셋을 단짝으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 강남이라는 지역의 특수성과 아이들의 아픔은 무관하지 않다. 경제적 이유로 가정이 붕괴된 세미는 할머니 손에 맡겨진다. 지혜는 부모의 불화로 고민이 크다. 준모는 틱 장애로 결국은 학교를 자퇴한다. 아픔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다.

 

셋은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며 힘든 시기를 헤쳐 나간다. 의식이 건전하고 그 또래에서 생기는 불량기도 없다. 어려운 환경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견뎌내는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오히려 어른들이 철부지 아이처럼 나온다. 자극적인 요소는 적어도 아이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젖는 소설이다.

 

<안녕, 내 모든 것>은 우리 모두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산업화 과정의 부작용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비인간화를 초래한다. 그 피해는 감수성이 강한 청소년에게 넘어간다. 헤세의 작품 <수레바퀴 밑에서>도 떠오른다. 완고한 어른들의 사회가 어린 영혼을 짓밟고 있다. 그러나 생명은 위대하다. 길 위의 잡초가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과 같다.

 

할머니의 시신을 아이들끼리 몰래 매장한 것은 그들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돈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할머니의 죽음을 자식들은 반겼을 수 있다.  그러나 세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고 정을 주지 않은 할머니였지만 동병상련이랄까, 생명에 대한 가련함을 느꼈을 것이다.

 

세미, 준모, 지혜를 보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분재 같다. 자연 상태에서 자랐다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을 텐데 안타깝다. 우리 사회는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보살핌이 부족하다. 준모는 외국으로 쫓겨가듯 나가서 나름의 삶을 찾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은 이어진다. 이 소설에서는 생명 본연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읽는다. 세상은 온통 흙탕물일지라도 휘젓지만 않으면 제 자리를 찾아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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