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변신 이야기

샌. 2017. 8. 27. 10:45

고전은 읽었다고 믿고 싶은 책이다. 이런 책을 읽지 않았을 리 없다고 자신을 납득시키면서 꺼내보는 책이다. 내용이나 줄거리는 어느 정도 꿰고 있으니 자기 확신이 생길 만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십중팔구 읽은 적이 없는 책이다.

 

 최근에 읽은 <변신 이야기>가 그랬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1, 2권이니 고전 중에서도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 수 있다. 이윤기 선생이 번역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볼펀치가 정리를 제일 잘 해 놓았지만, 당 시대에 쓴 글을 변형 없이 그대로 보고 싶었다. 디지털 카메라식으로 말하자면 볼펀치가 JPEG라면 <변신 이야기>는 RAW다.

 

<변신 이야기>는 원제가 'Metamorphoses'다. 변형, 변신, 변모라는 뜻으로 사물이 비롯되는 정황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무수한 변신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자는 오비디우스로 BC 43년에 로마에서 태어나서 AD 18년에 사망했다. 세계의 창조부터 로마의 건국까지 대서사시로 그린 것이 이 작품이다.

 

내용의 대부분은 로마 신화다. 아직 기독교에 물들기 이전의 서구인이 자연과 세계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잘 보여준다. 신, 인간, 동식물은 서로 몸을 바꾸면서 공존한다. 나무는 여신의 몸이다. 이런 인식 체계에서는 모든 자연물이 공경의 대상이 된다. 교만하면 벌을 받는다는 삶의 교훈도 포함되어 있다.

 

첫 부분에 나오는 천지창조와 인간이 등장하는 사연도 흥미롭다. 우주는 맨 처음에 그저 막막하게 퍼진 듯한 펑퍼짐한 모양인 카오스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어느 때 '자연'이라는 신이 개입해 우주에 질서를 부여했다. 하늘, 땅, 물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흙덩어리를 강물에 이겨 조물주의 형상으로 인간이 창조되었다. 뒤이어 대홍수 이야기도 나온다. 성서 창세기와 공통되는 점이 많다.

 

<변신 이야기>는 고전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준다. 사랑방 이야기꾼의 얘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다만 서양식 이름은 너무 헷갈린다. 누가 누군지 아무리 확인해도 금방 잊어버린다. 천지창조부터 카이사르까지 로마의 역사와 인물에 신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오비디우스가 무척 노력한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방식은 가볍고 경쾌하다. 2천 년 전 한 로마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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