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이게 뭐야? / 김사인

샌. 2017. 11. 15. 10:45

가슴이 철렁한다.

눈치챈 건 아닐까, 내가 깡통이라는 걸.

모른다는 것조차 잊고

언제부턴가 그냥 이렇게 살고 있는 걸.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차를 타고

모르는 내색을 아무도 않지.

 

이게 뭐야?

여기 어디야?

아이가 물으면

집에 갈래, 울먹이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뜨거워지네.

이건 강아지 이건 나무 이건 칫솔 그렇게 일러줄까 허둥지둥

구파발이라고 우리나라라고 지구라고 하면 되나.

강아지가 뭐야, 지구가 뭐야, 다시 물으면?

무서워라

- 걱정 마, 좋은 데 가고 있어

- 다 와가, 가보면 알아

 

나도 잘 모른단다.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왔는지, 저건 무언지

나도 실은 모른단다.

무서워서

입을 닫고 있단다.

내가 누군지도 사실은 모른다고

고백해버릴 것만 같네.

참아온 울음이 터질 것 같네.

 

그런 건 묻는 게 아니란다 여기선

일러주는 이름이나 외고 있다가

코밑이 시커메지면, 겨드랑이에 털이 돋으면

낮은 돈에 취하고, 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뻘밭에 쓰러져 눕는 거란다.

 

눈에는 핏발이 오르고

더러운 냄새를 입에 풍기며

제 말만 게워내는 어른이 되지.

모를 것도 물을 것도 더는 없어져

날개옷이 있어도 소용없다네.

 

떠날 날 문득 닥치면

또 무섭고 서러워 눈물 흐르지.

이곳 어디였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쓰던 몸 놓고 어디로 가자는지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으므로.

 

나도 두렵단다, 여기는 어딘지

나도 모른단다, 아아 아가들아

네가 누군지

나는 또 무엇인지.

 

- 이게 뭐야? / 김사인

 

 

모든 것이 궁금하겠지. 처음 보는 것들의 세상은 얼마나 신기할까. "이게 뭐야?" 이렇게 묻는 네 살 손주가 나는 신기해 죽겠다. 뜨끔해지고 싶어 자꾸 그 질문을 받고 싶다. 내가 아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깨우쳐주는 스승이 손주다. "이건 누구지?" 라고 물으면 손주는 "할아부지" 라고 답한다. 나는 내가 누군지 더 몽롱해진다. 우리는 왜 배울까? 이 세상과 삶이 미지의 신비에 싸여있다는 걸 깨닫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모른다. 진짜로 아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세상의 불가지성이 한없이 고맙다는 걸 손주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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