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층간 내리사랑

샌. 2017. 11. 27. 17:13

KBS TV에 나오는 공익광고 중에서 요사이 공감을 하며 본 게 '층간 내리사랑'이라는 광고다. 아파트 위층에 사는 사람이 아래층에 사는 사람을 배려하는 내리사랑을 보이자는 내용이다.

 

"집에서는 왜 까치발로 걸어요?"

"아랫집에 아기 재우는 초보 아빠가 있으니까요."

 

"사진 거는 걸 왜 내일까지 미루세요?"

"시험 앞둔 수험생이 있으니까요."

 

"오디션이 코앞인데 왜 기타는 안 치세요?"

"내일 면접인 아랫집 청년이 자고 있으니까요."

 

"층간 내리사랑, 이웃간의 새로운 사랑법입니다"라는 멘트로 광고는 마무리 된다.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는 따뜻한 광고다.

 

아파트공화국에서 층간 소음 문제는 심각하다. 내 집인데 아이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기를 바란다면, 다른 편에서는 타인의 소음으로 고통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둘의 갈등으로 심심찮게 살인 사건도 일어난다. 제일 좋은 해결책은 소음이 차단되는 아파트를 짓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삶의 질을 위해서 건축법 개정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소음을 완전히 막는 방법도 어렵거니와 아파트 같은 밀집 생활에서는 소음은 언제 어디서나 생기는 문제다. 기본적으로 이웃을 배려하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이웃의 배려를 느낀다면 어지간한 소음은 참아낼 수 있다. 분노의 감정을 촉발하는 것은 무시당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가가예문이라는 말이 있듯 살아가는 스타일도 집집마다 다르다. 조용한 집이 있는가 하면, 늘 시끌벅적한 집도 있다. 아파트에 살면 들리는 소리로 윗집 스타일이 대략 파악된다. 그런데 우리 윗집은 특이하다. 젊은 부부가 사는데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 낮에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저녁에는 하나둘 들어오는 것 같은데 본격적인 소음은 밤 11시가 되어야 생긴다. 그때면 아이들이 잘 법도 한데 윗집 아이들은 본격적인 활동 시간이다. 천정에 다이나믹한 쥐 서너 마리가 사는 것 같다. 짧으면 한 시간 정도에 끝나지만, 길면 새벽 1시까지 이어진다. 늦게 들어온 아빠와 노는 타임으로 보인다.

 

내가 우리 아이를 키울 때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밤 10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라고 했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잠자는 아이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보통의 가정일 것이다. 그런데 윗집은 야행성 가족이다. 문제는 내 잠자는 시간과 겹친다는 데 있다. 어쩌다 쿵, 하는 소리에 잠이 깨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러면 윗집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찾아가 여러 차례 항의도 하고 사정도 했다. 그래서 소음 데시벨은 많이 낮아졌다. 이젠 운명이라 여기고 내가 적응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이 이런 문제를 안고 살 것이다. 한 지인은 신경 쇠약에 걸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윗집이 막무가내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세를 살고 있다면 나가면 되는데, 내 집이라면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반면에 너무 예민한 아랫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윗집도 있다. 모두가 가해자면서 피해자가 되는 게 아파트 생활이다.

 

광고에 나오는 윗집은 아랫집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누가 사는지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만약 이웃간에 교류하며 지내고 서로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준다면 위층에서 조심하지 않을 리 없다. 내 생활 소음이 상대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층간 소음은 결국 익명성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그래도 공동생활에서는 최소한의 에티켓이 필요하다. 이웃에 피해를 줄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좀 더 조심스럽게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배려다. 우리에게 제일 부족한 부분이다. 그런 점은 일본인을 본받아야 한다. 중국인보다는 덜 하지만 우리는 꽤 시끄럽고 안하무인이다. 가까운 '층간 내리사랑'부터 실천한다면 훨씬 따스한 사회가 되리라고 본다. 그래야 나도 따스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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