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 장의 사진(24)

샌. 2017. 12. 7. 15:05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제대할 때는 누구나 한마디씩 한 말이 있었다. "제대하면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 군대 생활에 대한 혐오감이 그만큼 컸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군대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데 30년은 걸렸다.

 

반면에 '군대에 가야 사람 된다'는 말도 있다. 국민정신 교육장으로서 군대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의 말이다. 좋게 말하면 나라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온몸으로 배우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사람 된다'는 말이 권위적 체제와 이념에 대한 온순한 복종의 의미로 들린다.

 

외국에 나갔을 때 제일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이스라엘인이라는 얘기를 해외여행을 많이 한 사람에게서 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시끄럽고 안하무인이라는 것이다. 왜 하필 이스라엘인지 의아했는데 의무징병제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 강력한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북한, 이스라엘, 우리나라 정도로 알고 있다. 군 복무 중에 물든 난폭한 경험이 그대로 사회생활로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나의 추측이다.

 

군 생활의 긍정적 요소를 찾는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전까지는 선별된 집단 안에서만 살았다. 대학생이었을 때는 주로 같은 학생끼리만 만났다. 다른 길로 간 옛 동무들과는 자연스레 거리가 멀어졌다. 교직에 나와서는 밤낮으로 만나는 대상이 선생들이었다. 그런데 군대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70년대에는 대학물을 먹은 사람이 한 소대에 한두 명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한데 뒤섞여 지내야 했다. 나에게는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전직이 바텐더였던 A, 나이트에서 노래를 불렀던 B로부터는 희한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B는 나중에 문선대로 차출되어 갔는데 얼마간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유명한 트로트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희망대로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군대가 준 고마운 경험이었다.

 

그때 함께 뒹굴던 동기들과는 제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소식이 끊어졌다. 도예를 전공한 C와는 몇 차례 만나면서 전시회에도 갔었다.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군대 생활은 추억하기 싫지만 그때 만난 사람들은 가끔 생각난다.

 

이 사진은 동기의 전역을 축하하면서 동두천에 나가 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다. 다들 비슷한 시기에 입대했는데 그는 교련 혜택을 받고 몇 달 일찍 나갔다. 39년 전의 모습이다. 사단 사령부에서 복무하던 말년 병장들이니 사병이었어도 신수가 훤할 때였다.

 

얼마 전에 만난 Y 형이 우연히 군대 동기와 연락이 되어 재회했다고 들떠 말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연결이 된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옛날 사진을 하나 골라 보았다. 혹시 이 중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올 지도 모른다. 비록 백발이 되었어도 청춘의 힘들었던 한 시기를 함께 보냈던 경험은 각별한 것이리라. 만나서 동화 같은 그 옛날 이야기에 푹 빠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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