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죽여주는 여자

샌. 2017. 12. 1. 10:51

 

작년에 나온 영화인데 늦게서야 보았다. 우리 시대 노인의 성과 가난, 소외 계층의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자극적이거나 웅변조가 아니고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

 

'죽여주는 여자'는 윤여정 1인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의 유명도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만한 무게감이 있다. 윤여정이 연기한 소영은 파고다공원에서 노인을 상대로 몸을 팔아가며 살아간다. 일명 박카스 아줌마로 '죽여주는 여자'라는 별명으로 통하면서 다른 아줌마의 질시를 받는다.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은 소영은 진짜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죽는 사람보다는 소영의 심적 고통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소영은 일찍 보내주는 것이 그를 도와주는 것이라 판단한다. 결국 다른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노년의 가련함에 대한 동병상련 때문으로 보인다.

 

노년에 마주칠 어려움은 질병, 가난, 외로움이다. 질병과 가난이 함께 닥칠 때 고통은 증폭된다. 반면에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삶의 허무감과 우울증으로 말년을 쓸쓸하게 보내기도 한다. 전무송 씨가 연기한 노인은 아내를 떠나보낸 빈 공백을 메우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 옆에 소영도 있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오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인간의 품위를 지켜내는 힘을 기르지도 못했다. 육체와 함께 무너지는 정신을 보는 것은 너무 슬프다. 우선 기본 생활이 가능한 복지 제도의 확대 필요성이 시급하다. 마음 따뜻한 소영을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지 않을 정도의 사회보장제도는 만들어져야겠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음지에 방치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산 소영은 천사다.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고, 죽음을 앞당겨 주었다고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가련한 인생에 대한 측은지심이 영화 곳곳에 묻어 있다. 소영은 삼시 세끼 밥 먹여주는 감옥행을 기꺼이 택하고, 결국은 무연고자의 한 줌 재로 사라진다.

 

이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 마주한다는 것은 불편하다. 한쪽 눈은 감고 햇살 환한 세상에서만 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은 멀었다. 가슴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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